[김연의 하루를 시작하며] 입양의 빈칸, 기록되지 않은 문장들
입력 : 2025. 08. 27(수) 01:30
김미림 기자 kimmirimm@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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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라일보] 한국의 국제 입양은 전쟁 직후부터 이어진 오래된 역사다. 1950년대부터 수십 년간 수만 명의 아동이 해외로 보내졌고, 1970~80년대에는 해마다 수천 건에 이를 정도였다. 최근 진실화해위원회 조사와 해외 보도는 그 과정에서의 기록 조작·친권 동의 미비 등 구조적 문제를 구체적으로 드러냈다. '복지 비용 절감'이라는 정책적 논의와 민간기관 중심의 입양 체계가 맞물리며, 많은 이들이 자신의 출생 서류를 신뢰할 수 없는 현실을 마주하게 된 것이다. 올해 7월 19일 이재명 정부는 입양의 주체를 민간에서 국가와 지자체로 전환하는 '국내입양에 관한 특별법'과 '국제입양에 관한 법률'을 시행했다. 중앙정부가 절차 전반을 관리·감독하고, 결연·사후관리도 공적 책임으로 통합하는 구조다. 법이 바뀌었다고 해서 곧바로 가시적인 변화가 나타나기는 어렵다. 이를 방증하듯 지난 7월 23일, 고양의 냉동 물류창고에 임시 적치된 입양 기록물 논란은 '보호'의 이름으로 관리되는 기록이 얼마나 쉽게 보존과 접근권의 사각지대로 미끄러질 수 있는지를 드러냈다.
습관처럼 넘기던 짧은 뉴스에서, 자신의 출신에 대한 불확실성을 안고 해외 각지에서 서로 다른 눈동자로 살아온 수많은 입양인의 삶이 겹쳐졌다. 그리고 자연스레 얼마 전 읽은 킴 투이의 소설 '앰(em)'이 떠올랐다. 1968년 사이공에서 태어나 10세에 보트피플로 캐나다에 정착한 작가 킴 투이는 번역가·변호사·음식 연구가를 거쳐 소설가가 됐고, 정제된 단편들로 전쟁과 이주의 디테일을 기록해 왔다. 소설에서도 그는 기록의 권한과 기억의 편집이 작동하는 지점을, 개인의 몸과 공적 사건 사이의 간극에서 집요하게 탐색한다.
소설은 한 사람의 서사가 아니라 장면들의 합창이다. 프랑스 고무 농장주 알렉상드르와 잠입 공작원 마이, 그 사이에서 태어난 딸 떰, 길에서 버려진 아이를 거두어 '앰 홍'이라 부르는 루이, 그리고 베이비리프트(베트남전쟁 막바지, 미국이 남베트남의 고아들을 항공편으로 대피시킨 작전)·프리퀀트 윈드(사이공 함락 직전, 미국이 자국민과 우방국 국민을 헬리콥터로 대피시킨 작전)로 이어지는 대피와 흩어짐, 정글을 태운 고엽제 살포, 미라이 학살 같은 공적 사건들이 인물들의 일상과 같은 문장 속에 배치된다. 제목 '앰'은 베트남어로 '(어린)동생'이자 프랑스어 'aime'와 소리를 맞대며, 약한 존재를 부르는 친밀한 호칭과 '사랑하라'는 다정한 명령을 겹친다. 소설은 존재를 향한 그 애틋한 호명이 거리의 연대-넘어진 이를 일으켜 세우며 즉석의 가족을 이루는-로 어떻게 실천되는지를 보여준다.
먼 길을 돌아왔지만, 입양의 기록은 행정 문서가 아니라 존재의 흔적을 증명하는 언어다. 결국 중요한 건 출발이 아니라 귀환일지 모른다. 서류로는 닿을 수 없는 자리를 관계의 교섭으로 조금씩 되돌려 받는 일. '앰'이 그러하듯, 지워진 이름과 흩어진 삶을 다시 불러내는 일은 사랑의 실천이자 우리가 마주해야 할 공동의 책임일 것이다. <김연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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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은 한 사람의 서사가 아니라 장면들의 합창이다. 프랑스 고무 농장주 알렉상드르와 잠입 공작원 마이, 그 사이에서 태어난 딸 떰, 길에서 버려진 아이를 거두어 '앰 홍'이라 부르는 루이, 그리고 베이비리프트(베트남전쟁 막바지, 미국이 남베트남의 고아들을 항공편으로 대피시킨 작전)·프리퀀트 윈드(사이공 함락 직전, 미국이 자국민과 우방국 국민을 헬리콥터로 대피시킨 작전)로 이어지는 대피와 흩어짐, 정글을 태운 고엽제 살포, 미라이 학살 같은 공적 사건들이 인물들의 일상과 같은 문장 속에 배치된다. 제목 '앰'은 베트남어로 '(어린)동생'이자 프랑스어 'aime'와 소리를 맞대며, 약한 존재를 부르는 친밀한 호칭과 '사랑하라'는 다정한 명령을 겹친다. 소설은 존재를 향한 그 애틋한 호명이 거리의 연대-넘어진 이를 일으켜 세우며 즉석의 가족을 이루는-로 어떻게 실천되는지를 보여준다.
먼 길을 돌아왔지만, 입양의 기록은 행정 문서가 아니라 존재의 흔적을 증명하는 언어다. 결국 중요한 건 출발이 아니라 귀환일지 모른다. 서류로는 닿을 수 없는 자리를 관계의 교섭으로 조금씩 되돌려 받는 일. '앰'이 그러하듯, 지워진 이름과 흩어진 삶을 다시 불러내는 일은 사랑의 실천이자 우리가 마주해야 할 공동의 책임일 것이다. <김연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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