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철남의 문연路에서] 제주4·3기록관, 세상의 물음에 답하다
입력 : 2025. 09. 30(화) 01:00
김미림 기자 kimmirimm@ihalla.com
흩어진 역사의 조각 맞춰
존엄한 삶 돌려놓는 일
미래를 향한 새로운 여정




[한라일보] 칠흑 같던 시간 속에서 제주의 아픔은 섬 안을 맴도는 바람 소리와 같았다. 세상은 듣지 못했고, 우리는 소리 내어 말하지 못했다. 그러나 꾹 다문 입술 사이로 새어 나오던 진실의 조각들이 모여 인류의 이야기가 되었다. 제주4·3의 기록이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된 것은, 세상이 제주의 문을 두드리며 "당신들의 아픔은 우리가 함께 기억해야 할 역사입니다"라고 말해준 것과 같았다.

이 인정은 우리에게 영광인 동시에 무거운 약속이 되었다. 세계의 유산을 보존하고 그 가치를 미래와 공유해야 할 책무, 바로 그 약속을 지키기 위한 첫걸음이 '제주4·3기록관' 건립이다. 기록관은 단순히 기록을 보관하는 공간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그곳은 아직 세상에 나오지 못한 마지막 증언, 빛바랜 사진 한 장까지 찾아내어 제자리를 찾아주는 '기억의 구심점'이 되어야 한다. 이는 흩어진 역사의 조각을 맞추는 것을 넘어, 한 사람의 존엄한 삶을 본래 자리로 돌려놓는 일이기도 하다.

기록관의 문은 과거를 향해서만 열리지 않는다. 오히려 더 넓은 문이 미래 세대와 세계를 향해 활짝 열려야 한다. 우리 아이들은 이곳에서 4·3을 제주의 비극을 넘어, 국가폭력에 저항하고 인간의 존엄을 지켜낸 인류 보편의 역사로 배우게 될 것이다. 단순히 사실을 나열하는 전시가 아니라 생존자의 목소리를 듣고, 희생자의 삶을 느끼며, 평화의 가치를 체득하는 살아있는 교육의 장이 되어야 한다. 슬픔의 역사를 배우는 것을 넘어, 타인의 고통에 공감하는 마음과 평화가 얼마나 쉽게 깨질 수 있는 약속인지를 배우는 지혜의 공간이 되어야 한다.

나아가 기록관은 제주의 아픔이 세계인의 마음속에 평화의 씨앗으로 심어지는 '연대의 광장'이 되어야 한다. 전 세계의 연구자들이 찾아와 화해와 상생의 과정을 연구하고, 다른 아픈 역사를 가진 이들이 제주의 경험을 통해 위로와 희망을 얻고 돌아가야 한다. 디지털 아카이브를 통해 시공간을 넘어 제주의 이야기가 전 세계로 퍼져나가고, 4·3의 교훈이 인권과 평화를 위한 국제적 논의에 기여해야 한다. 제주의 가장 아픈 손가락이 인류의 상처를 보듬는 따뜻한 손길이 될 때, 과거의 비극은 미래를 향한 희망의 서사로 피어나며, 제주는 그 살아있는 증거로 세계에 영감을 줄 것이다.

4·3기록관 건립은 지난한 역사를 마감하는 마침표가 아니라, 미래를 향한 새로운 페이지를 여는 첫 문장이다. 그 문장은 "우리는 기억할 것입니다"라는 다짐으로, "우리는 함께할 것입니다"라는 약속으로, 그리고 "우리는 당신들의 이야기를 통해 더 나은 세상을 만들 것입니다"라는 희망으로 채워져야 한다.

세상의 물음에 제주의 이름으로 답하는 것, 그것이 우리가 4·3기록관을 짓는 이유이다. 이 여정에 우리 모두가 주역이 되어 함께해야 할 때이다.

<강철남 제주특별자치도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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