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 언어의 갈라파고스 142] 3부 오름-(101)물찻과 말찻, 등성이가 두드러진 오름
입력 : 2025. 09. 02(화) 03:00수정 : 2025. 09. 02(화) 07:01
김미림 기자 kimmirimm@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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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찻, 말찻 그리고 거문오름, 같은 오름 다른 이름

'물찻'은 물로 만든 성(城)?
[한라일보] 제주시 조천읍 교래리에 물찻이라는 오름이 있다. 표고 717.2m, 자체높이 167m다. 산 정상부는 연중 물이 고여 화구호를 형성한다. "숲으로 덮여 검게 보인다고 하여 검은오름이라고 한다지만, 어원적 해석으로는 신령스런 산이라는 뜻", 제주의 오름이라는 책에 나오는 내용이다.
1530년 신증동국여지승람에 수성산(水城山)이라 한 후 고전에 따라 물좌질악(勿左叱岳), 수성(水城), 수성봉(水城峰), 물찻, 거문악(拒文岳), 거문오름(黑岳)으로 표기했다. 이 지명들은 크게 두 가지다.
첫째는 '물'이라는 말이 들어 있는 수성산(水城山), 물좌질악(勿左叱岳), 수성(水城), 수성봉(水城峰), 물찻 등이다. 이 지명 중 물좌질악(勿左叱岳)은 다소 이질적으로 보인다. 여기서 '물(勿)'이란 원래 '말 물'이라는 글자다. 이 지명에서는 그저 발음만을 나타내기 위해 동원한 글자다. '좌(左)'는 '왼 좌'다. 역시 발음을 위해 동원했다. '질(叱)'이란 글자는 다소 생소할 수도 있다. '꾸짖다'라는 의미로 쓴다.
그런데 향찰이나 이두 등 차자표기에서는 사이시옷(ㅅ)이나 종성 'ㅅ'을 나타낸다. 그러므로 '물좌질악(勿左叱岳)'이라고 표기는 했으나 '물좟오름'으로 읽으라는 취지다. 오늘날의 관점에서 보면 '물찻오름'이라 부른다는 것이다.
나머지는 수성(水城)과 여기에 '산(山)'이 붙은 수성산(水城山), 봉(峰)이 붙은 수성봉(水城峰), 그리고 순우리말 물찻이 있다.
수성(水城)은 '물 수(水)'에 '잣 성(城)'이다. '수(水)'를 훈독자로 보아 '물(水)'이라고 해독하고, '잣 성(城)' 역시 훈독자로 보면 '물로 만든 성'이 된다. 돌로 만들면 석성(石城), 흙으로 만들면 토성(土城)이다. 수성이란 있을 수 없는 성이다.
그러므로 이 지명은 훈독자로 된 지명이 아니라는 점이 명백하다. 모든 저자들이 이 '수(水')는 오름 분화구에 물이 있어 반영된 것이라고 믿는다. 확증편향이다. 이렇게 말이 되지 않으니 어떤 전문가는 '물이 있는 성'이라고 해독했다. 구무 즉, 분화구에 물이 있고 돌이 성처럼 쌓여 있다는 데서 붙여진 이름이라는 것이다. 이런 해독은 수백 년 전부터 있어 왔다. 그러나 오래됐다고 진실을 보장하는 것은 아니다.
'물'은 '물(水)'이 아니다
"물잣오름의 '잣'은 단순히 성을 뜻하는 말이 아니고, 제주어 '우잣'의 '잣'과 같이 '밭' 또는 '들판'의 뜻으로도 볼 수 있다"고 주장한다. 이상한 주장이다. '우잣'이란 한 집안의 울을 두른 담장이나 그 담장 안쪽의 일대를 지칭한다.
이 말은 제주 고유어는 아니다. '울잣'의 형태로 쓰였다. 1728년에 김천택이 엮은 청구영언이란 시집에 실린 허정의 시에서도 볼 수 있다. 밭이나 들판을 지칭하는 것이 아니다.
한발 물러서서 보면 이 '물'이란 '물(水)'이 아님을 알게 된다. 이 오름은 분화구에 물이 있기도 하지만 등성마루가 유별나게 두드러진 지형이기도 하다.
바로 옆 오름을 지시하는 지명을 보면 좀 더 선명해진다. 주소는 같다. 표고 653.3m, 자체높이 103m다. 제주도가 출판한 제주의 오름에는 '말찻(말찻)'으로 표기했다. '말'은 제주어 '말'로서 말 방목장이라는 뜻에서 유래한다는 설을 소개하고 있다.
1703년 탐라순력도에 마을좌질악(馬乙左叱岳) 등 고전에는 언성(言城), 언성악(言城岳), 두성봉(斗城峰), 말찻, 물찻, 수만악(水滿岳)으로 표기했다.
마을좌질악(馬乙左叱岳)은 물찻오름을 물좌질악(勿左叱岳)이라 표기한 것과 같은 이치로 말잣오름을 의미한다. 언성악(言城岳)의 언성(言城)이란 '말씀 언(言)+잣 성(城)'의 구조다. 역시 말잣오름을 달리 표기한 것이다. 두성봉(斗城峰)은 '말 두(斗)+잣 성(城)'의 구조이므로 역시 말잣오름을 나타낸 것이다.
언어사회에 따라 관점도 달라
오늘날 '말찻(말찻)' 오름은 말잣, 말찻, 물찻 등으로 불렸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말찻(말찻)'은 '셋째의', '작은'의 뜻으로 쓰이는 '말젯'의 변음이거나 큰 오름 즉, 물찻오름에 딸린 작은 오름이라고 추정한 전문가가 있다. 원래의 뜻을 알 수 없으니 이리저리 생각해 본다는 점에서 이해는 가지만 본래의 뜻과는 거리가 멀다.
이 지명들에 들어있는 물찻, 말찻, 말찻 등의 '말', '물', '말' 들은 '마르'의 축약이다. '마르'란 '길게 등성이가 이루어진 지붕이나 산의 꼭대기'를 지시한다. '마르'는 축약형 '말'로 발음하다가 연상작용이 더해져 '물', '말' 등으로도 분화했다. 어느 시기에 한자로 표기하면서 '마루 지(旨)'를 차용해 쓰다가 점차 발음이 같은 '아들 자(子)'로도 쓰게 되었다. '지(旨)'와 '자(子)'는 발음이 '자'로 똑같다. 그러므로 물찻, 말찻, 말찻 등은 모두 '마르마르'라는 뜻이다. 이중첩어 지명이다. 등성이가 두드러진 오름이란 뜻이다. 이 지명에서 '마루 지(旨)' 혹은 '아들 자(子)'가 포함된 기록이 아직 발견되지 않았을 뿐이다.
거문오름으로도 부른다는데, '거문-'은 무슨 뜻인가? 숲으로 덮여 검게 보인다는 뜻이 아니다. 이 말은 고대어로 '산맥', '봉우리가 연달아 이어진'의 뜻을 갖는다. 아이누어 기원이다. 등성마루가 크고 작은 봉우리로 이어지면서 기복을 보이는 특징을 반영한 지명이다. 선흘리 거문오름, 구좌읍 종달리 동검은이 등도 같은 지명이다. 여기서 말하는 물찻과 말찻은 같은 오름 같은 뜻이다. 두 개의 오름이 아니라 하나의 오름으로 인식했다. 거문오름이라는 지명도 등성마루가 긴 데서 연유하므로 결국 같은 뜻이다. 언어사회에 따라 오름은 하나인데 관점은 달라질 수 있다는 걸 알 수 있는 부분이다.
<김찬수 한라산생태문화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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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라일보] 제주시 조천읍 교래리에 물찻이라는 오름이 있다. 표고 717.2m, 자체높이 167m다. 산 정상부는 연중 물이 고여 화구호를 형성한다. "숲으로 덮여 검게 보인다고 하여 검은오름이라고 한다지만, 어원적 해석으로는 신령스런 산이라는 뜻", 제주의 오름이라는 책에 나오는 내용이다.
첫째는 '물'이라는 말이 들어 있는 수성산(水城山), 물좌질악(勿左叱岳), 수성(水城), 수성봉(水城峰), 물찻 등이다. 이 지명 중 물좌질악(勿左叱岳)은 다소 이질적으로 보인다. 여기서 '물(勿)'이란 원래 '말 물'이라는 글자다. 이 지명에서는 그저 발음만을 나타내기 위해 동원한 글자다. '좌(左)'는 '왼 좌'다. 역시 발음을 위해 동원했다. '질(叱)'이란 글자는 다소 생소할 수도 있다. '꾸짖다'라는 의미로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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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면 작은 가친오름 뒤에 좌우로 산등성이가 산맥처럼 긴 오름이 물찻과 말찻, 한 오름으로 보기도 한다. 김찬수 |
나머지는 수성(水城)과 여기에 '산(山)'이 붙은 수성산(水城山), 봉(峰)이 붙은 수성봉(水城峰), 그리고 순우리말 물찻이 있다.
수성(水城)은 '물 수(水)'에 '잣 성(城)'이다. '수(水)'를 훈독자로 보아 '물(水)'이라고 해독하고, '잣 성(城)' 역시 훈독자로 보면 '물로 만든 성'이 된다. 돌로 만들면 석성(石城), 흙으로 만들면 토성(土城)이다. 수성이란 있을 수 없는 성이다.
그러므로 이 지명은 훈독자로 된 지명이 아니라는 점이 명백하다. 모든 저자들이 이 '수(水')는 오름 분화구에 물이 있어 반영된 것이라고 믿는다. 확증편향이다. 이렇게 말이 되지 않으니 어떤 전문가는 '물이 있는 성'이라고 해독했다. 구무 즉, 분화구에 물이 있고 돌이 성처럼 쌓여 있다는 데서 붙여진 이름이라는 것이다. 이런 해독은 수백 년 전부터 있어 왔다. 그러나 오래됐다고 진실을 보장하는 것은 아니다.
'물'은 '물(水)'이 아니다
"물잣오름의 '잣'은 단순히 성을 뜻하는 말이 아니고, 제주어 '우잣'의 '잣'과 같이 '밭' 또는 '들판'의 뜻으로도 볼 수 있다"고 주장한다. 이상한 주장이다. '우잣'이란 한 집안의 울을 두른 담장이나 그 담장 안쪽의 일대를 지칭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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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왼쪽에 등성이가 길게 두드러진 오름이 물찻오름이다. 김찬수 |
한발 물러서서 보면 이 '물'이란 '물(水)'이 아님을 알게 된다. 이 오름은 분화구에 물이 있기도 하지만 등성마루가 유별나게 두드러진 지형이기도 하다.
바로 옆 오름을 지시하는 지명을 보면 좀 더 선명해진다. 주소는 같다. 표고 653.3m, 자체높이 103m다. 제주도가 출판한 제주의 오름에는 '말찻(말찻)'으로 표기했다. '말'은 제주어 '말'로서 말 방목장이라는 뜻에서 유래한다는 설을 소개하고 있다.
1703년 탐라순력도에 마을좌질악(馬乙左叱岳) 등 고전에는 언성(言城), 언성악(言城岳), 두성봉(斗城峰), 말찻, 물찻, 수만악(水滿岳)으로 표기했다.
마을좌질악(馬乙左叱岳)은 물찻오름을 물좌질악(勿左叱岳)이라 표기한 것과 같은 이치로 말잣오름을 의미한다. 언성악(言城岳)의 언성(言城)이란 '말씀 언(言)+잣 성(城)'의 구조다. 역시 말잣오름을 달리 표기한 것이다. 두성봉(斗城峰)은 '말 두(斗)+잣 성(城)'의 구조이므로 역시 말잣오름을 나타낸 것이다.
언어사회에 따라 관점도 달라
오늘날 '말찻(말찻)' 오름은 말잣, 말찻, 물찻 등으로 불렸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말찻(말찻)'은 '셋째의', '작은'의 뜻으로 쓰이는 '말젯'의 변음이거나 큰 오름 즉, 물찻오름에 딸린 작은 오름이라고 추정한 전문가가 있다. 원래의 뜻을 알 수 없으니 이리저리 생각해 본다는 점에서 이해는 가지만 본래의 뜻과는 거리가 멀다.
이 지명들에 들어있는 물찻, 말찻, 말찻 등의 '말', '물', '말' 들은 '마르'의 축약이다. '마르'란 '길게 등성이가 이루어진 지붕이나 산의 꼭대기'를 지시한다. '마르'는 축약형 '말'로 발음하다가 연상작용이 더해져 '물', '말' 등으로도 분화했다. 어느 시기에 한자로 표기하면서 '마루 지(旨)'를 차용해 쓰다가 점차 발음이 같은 '아들 자(子)'로도 쓰게 되었다. '지(旨)'와 '자(子)'는 발음이 '자'로 똑같다. 그러므로 물찻, 말찻, 말찻 등은 모두 '마르마르'라는 뜻이다. 이중첩어 지명이다. 등성이가 두드러진 오름이란 뜻이다. 이 지명에서 '마루 지(旨)' 혹은 '아들 자(子)'가 포함된 기록이 아직 발견되지 않았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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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찬수 한라산생태문화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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