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 언어의 갈라파고스 141] 3부 오름-(100)노리손이,산맥처럼 길게 늘어진 오름
입력 : 2025. 08. 26(화) 03:00수정 : 2025. 08. 26(화) 13:27
고성현 기자 kss0817@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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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리손이' 오름에서 정말 노루를 쏘았나?

'노루'는 짐승이 아니다
[한라일보] 제주시 연동 해발 612.2m에 노리손이라는 오름이 있다. 자체높이 136m다. 1653년 탐라지에 노로객악(勞老客岳)으로 표기했다.
장손(獐遜), 장손악(獐遜岳) 등으로 표기한 책도 있다. 제주시의 옛 지명이라는 책에는 '노로-순이'를 표제어로 하고, 노리생이, 노리-오름, 장악(獐岳)을 동의어로 했다. 이와 함께 이 오름에 '노루가 많이 산다'면서 '노로순이'는 '장악, 노리(노루)오름'이라고 했다. 제주의 오름이란 책에는 노루생이, 노리오름이라는 지명으로도 기록했다.
지금까지 기록과 채록을 보면 노로순이, 노리손이, 노루생이, 노리오름, 노로객(勞老客), 노로객악(勞老客岳), 장손(獐遜), 장손악(獐孫岳), 장악(獐岳) 등 9가지다. 여기에서 순우리말로 되어 있는 지명은 노로순이, 노리손이, 노루생이, 노리오름 등 4가지다.
이 지명들에서 보이는 '노로', '노리', '노루'가 지시하는 것은 무엇인가? 또 '-순이', '-손이', '-생이'는 무얼 말하는가가 쟁점이 된다. 이 지명을 설명한 저자들은 예외 없이 짐승 '노루'라고 했다. 이런 해석은 지역 일반은 물론 언론인, 전문가 등 모두 똑같다. "'노리'는 노루의 제주방언, '손'은 '쏜(射·소다=쏘다)'의 옛말로 노루가 많아서 옛날부터 노루사냥으로 이름났던 오름에서 연유하여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이러한 설명은 김종철의 1995년 오름 나그네 이후 표현에 다소의 차이는 있을지라도 거의 대동소이하다.
그렇다면 이 오름엔 노루가 많았었나?, 노루사냥으로 이름이 났었나? 이런 내용은 다음에 나오는 몇 '노리오름'에도 똑같이 적용되는가? 노루를 쏘아서 '노리손이'라 했다면 지명에 반영될 만큼 특별해야 할 것인데 그런 건 설명하지 않고 마치 당연히 그런 것처럼 일반화해 버리는 것은 자연스럽지 않은 논리 전개다.
'-순이', '-손이', '-생이'의 정체
제주 지명에 들어 있는 언어는 오늘날의 언어와는 상당히 다르다. 그것은 지금까지 본 기획에서 다루었다시피 많은 사례에서 알 수 있다.
제주 지명에서 보이는 언어들은 고대어가 상당히 많을 뿐만 아니라 심지어 그보다 훨씬 이전의 언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오래된 언어들도 밝혀지고 있다. 국어사에서 고대어란 광개토대왕비가 건립된 서기 414년부터 13세기 말까지의 국어를 지칭한다.
이 오름과 짐승 노루의 관계를 명확히 제시하지 못한다면 그 외에서 기원을 찾는 것이 마땅하다. 퉁구스어로 '느르'는 '긴' 혹은 '산맥'이란 뜻이다. 우리말 '늘다', '늘이다'의 어간 '늘'과 어원을 공유한다. 몽골어에서도 산맥을 '누루(몽골어 нуруу; 영어 알파베트 표기 nuruu)'라고 한다. 등뼈를 지시하기도 한다. '길게 산맥을 이루는'의 뜻이다. 시대 혹은 지역이나 개인에 따라 '노로', '노리', '노루'로 발음할 수 있다.
'-순이', '-손이', '-생이'란 무슨 뜻인가. 이 말은 고대어 그중에서도 고구려어에서 기원한 '술이'의 변음들이다. 봉우리를 지시한다. 여기서 '솥', '삿', '생', '싕' 등으로 다양하게 분화했다는 점은 이미 본 기획 59회에 자세히 다뤘다. 이런 지명어가 붙는 오름은 '높고 긴 산'을 의미하기도 하며, 어승생, 사스미(녹산), 거린사슴 등을 예로 들었다. '노리손이'란 산맥처럼 길게 늘어진 산을 지시한다. 이 오름의 지명 노로순이, 노리손이, 노루생이, 노리오름을 보면 유별나게 '노리오름'에만 '-손이'라는 지명어를 생략하고 그 대신 '-오름'을 붙였다. 즉, '노리손이오름'이라고는 하지 않는다. '-순이', '-손이', '-생이' 자체만으로 오름을 지시하는 지명어 구실을 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제주시 봉개동 명도암에도 같은 이름의 오름이 있다. 이 오름은 동·서 두 개의 오름으로 이루어져 있다. 동쪽 큰노리손이는 표고 426m, 자체높이 52m, 서쪽 족은노리손이는 표고 413.8m, 자체높이 28m다. 이 두 개의 봉우리로 된 노리손이는 연동의 노리손이와 지명이 같을 뿐만 아니라 이에 대한 설명도 옛날 노루를 쏘았던 어쩌고~처럼 거의 같다. 엉뚱한 이야기다. 역시 산맥처럼 길게 늘어진 산을 지시한다.
산맥처럼 길게 늘어진 산
제주시 애월읍 유수암리에도 노로오름이 있다. 여러 개의 봉우리로 되어 있다. 이름이 거의 같으나 이 오름에는 '-손이'가 붙어 있지 않다.
노루가 많이 서식해서 붙은 이름이라는 설명이 널리 유포되어 있다. 노루는 많았지만 쏘지는 않았던 모양이다. 엉뚱한 얘기다. 제주시 조천읍 교래리에도 노로오름이 있다. 표고 419m와 418.2m의 봉우리들이다. 서귀포시 하원동에도 노리오름이 있다. 이 오름들도 모두 산맥처럼 길게 늘어진 오름들이다.
연동 노리오름의 한자표기는 노로객(勞老客), 노로객악(勞老客岳), 장손(獐遜), 장손악(獐孫岳), 장악(獐岳) 등이다. 노로객(勞老客)은 '노로+객(客)'이다. '객(客)'은 '손 객'이니 '노로손'을 표기한 것이다. '장손(獐遜)'의 '장(獐)'은 '노루 장(獐)'이다. 훈의 발음만 빌려 쓴 것이다. '손(遜)'은 '겸손할 손'이다. 음만 빌렸다. '노루손'이라고 표기한 것이다. '장악(獐岳)'도 마찬가지다. 노루를 중세국어에서는 '노로' 혹은 '노라'라 했다. 그러므로 '노로오름'을 표기한 것이다. 이들 한자 표기에서 노로객악(勞老客岳), 장손악(獐孫岳)의 '악(岳)'은 덧붙은 것이다. 제주도에서는 '-순이', '-손이', '-생이' 자체만으로 오름을 지시했다. 이것을 모르는 기록자들이 굳이 '악(岳)'을 붙인 것이다.
노리손이, 노로순이, 노루생이, 노리오름, 노로오름 등은 짐승 노루와 관계가 없다. 산맥처럼 길게 늘어진 오름을 나타내는 지명들이다. 고대 몽골어계 기원이다.
<김찬수 한라산생태문화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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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라일보] 제주시 연동 해발 612.2m에 노리손이라는 오름이 있다. 자체높이 136m다. 1653년 탐라지에 노로객악(勞老客岳)으로 표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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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리손이, 연동에 있으며, 노로순이, 노루생이, 노리오름라고도 한다. 김찬수 |
이 지명들에서 보이는 '노로', '노리', '노루'가 지시하는 것은 무엇인가? 또 '-순이', '-손이', '-생이'는 무얼 말하는가가 쟁점이 된다. 이 지명을 설명한 저자들은 예외 없이 짐승 '노루'라고 했다. 이런 해석은 지역 일반은 물론 언론인, 전문가 등 모두 똑같다. "'노리'는 노루의 제주방언, '손'은 '쏜(射·소다=쏘다)'의 옛말로 노루가 많아서 옛날부터 노루사냥으로 이름났던 오름에서 연유하여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이러한 설명은 김종철의 1995년 오름 나그네 이후 표현에 다소의 차이는 있을지라도 거의 대동소이하다.
그렇다면 이 오름엔 노루가 많았었나?, 노루사냥으로 이름이 났었나? 이런 내용은 다음에 나오는 몇 '노리오름'에도 똑같이 적용되는가? 노루를 쏘아서 '노리손이'라 했다면 지명에 반영될 만큼 특별해야 할 것인데 그런 건 설명하지 않고 마치 당연히 그런 것처럼 일반화해 버리는 것은 자연스럽지 않은 논리 전개다.
'-순이', '-손이', '-생이'의 정체
제주 지명에 들어 있는 언어는 오늘날의 언어와는 상당히 다르다. 그것은 지금까지 본 기획에서 다루었다시피 많은 사례에서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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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리손이, 사진에서 봉개동 제주4·3평화기념관 뒤 동서로 길게 두 개의 봉우리로 된 오름이다. 김찬수 |
이 오름과 짐승 노루의 관계를 명확히 제시하지 못한다면 그 외에서 기원을 찾는 것이 마땅하다. 퉁구스어로 '느르'는 '긴' 혹은 '산맥'이란 뜻이다. 우리말 '늘다', '늘이다'의 어간 '늘'과 어원을 공유한다. 몽골어에서도 산맥을 '누루(몽골어 нуруу; 영어 알파베트 표기 nuruu)'라고 한다. 등뼈를 지시하기도 한다. '길게 산맥을 이루는'의 뜻이다. 시대 혹은 지역이나 개인에 따라 '노로', '노리', '노루'로 발음할 수 있다.
'-순이', '-손이', '-생이'란 무슨 뜻인가. 이 말은 고대어 그중에서도 고구려어에서 기원한 '술이'의 변음들이다. 봉우리를 지시한다. 여기서 '솥', '삿', '생', '싕' 등으로 다양하게 분화했다는 점은 이미 본 기획 59회에 자세히 다뤘다. 이런 지명어가 붙는 오름은 '높고 긴 산'을 의미하기도 하며, 어승생, 사스미(녹산), 거린사슴 등을 예로 들었다. '노리손이'란 산맥처럼 길게 늘어진 산을 지시한다. 이 오름의 지명 노로순이, 노리손이, 노루생이, 노리오름을 보면 유별나게 '노리오름'에만 '-손이'라는 지명어를 생략하고 그 대신 '-오름'을 붙였다. 즉, '노리손이오름'이라고는 하지 않는다. '-순이', '-손이', '-생이' 자체만으로 오름을 지시하는 지명어 구실을 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제주시 봉개동 명도암에도 같은 이름의 오름이 있다. 이 오름은 동·서 두 개의 오름으로 이루어져 있다. 동쪽 큰노리손이는 표고 426m, 자체높이 52m, 서쪽 족은노리손이는 표고 413.8m, 자체높이 28m다. 이 두 개의 봉우리로 된 노리손이는 연동의 노리손이와 지명이 같을 뿐만 아니라 이에 대한 설명도 옛날 노루를 쏘았던 어쩌고~처럼 거의 같다. 엉뚱한 이야기다. 역시 산맥처럼 길게 늘어진 산을 지시한다.
산맥처럼 길게 늘어진 산
제주시 애월읍 유수암리에도 노로오름이 있다. 여러 개의 봉우리로 되어 있다. 이름이 거의 같으나 이 오름에는 '-손이'가 붙어 있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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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로오름, 애월읍 유수암리에 있다. 큰노꼬메에서 촬영했다. 김찬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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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리손이, 노로순이, 노루생이, 노리오름, 노로오름 등은 짐승 노루와 관계가 없다. 산맥처럼 길게 늘어진 오름을 나타내는 지명들이다. 고대 몽골어계 기원이다.
<김찬수 한라산생태문화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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