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민의 백록담] 동복리와 기자회견
입력 : 2025. 07. 21(월) 03:00수정 : 2025. 07. 21(월) 18:16
이상민 기자 hasm@ihalla.com
[한라일보] 직업이 기자다보니 기자회견이나 시위를 많이 보게 된다. 형식은 다르지만 둘 다 목적은 비슷하다.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을 상대방에게 잘 전달하고 설득해 원하는 바를 이루는 것이다. 그런데 기자회견이나 시위를 보다보면 오로지 관심은 말하고 싶은 것과 원하는 것에만 있고, 메시지를 전달해야 할 상대방에 대해선 별 관심을 두지 않는 경우가 종종 있다. 아마 한 달 전 있었던 제주도와 동복리 마을회의 쓰레기 처리 정상화 합의 기자회견이 그런 경우가 아닌가 싶다.

동복리 주민들과 제주도는 '마을회가 제주환경자원순환센터 진입로 봉쇄를 풀고 쓰레기 처리에 적극 협조하는 조건으로, 제주도는 마을이 요구한 농경지 폐열사업에 상응하는 사업을 추진한다'는 내용의 합의문을 발표했다. 합의문을 읽는 제주도 고위 공직자의 표정은 상기돼 있었다. 나흘간 이어진 쓰레기 처리난을 매듭짓고, 합의를 이끌어 냈으니 스스로 뿌듯하게 여겼을지도 모른다. 기자회견에 동석한 마을주민이 앞으로 환경자원순환센터 운영에 적극 협조하겠다고 했을 땐 그는 연신 고개를 끄덕이며 미소를 지어 보였다. 합의문 발표가 끝나자 양측은 서둘러 자리를 뜨려했다. 오영훈 제주지사와 동복리 주민들이 만나기로 한 면담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이유에서였다.

이번 사태는 둘이 합의했다고 해서 끝날 문제가 아니었다. 환경자원순환센터가 봉쇄된 탓에 병원, 호텔 등과 계약을 맺고 쓰레기를 수거·처리하는 민간업체들은 제대로 영업을 하지 못해 피해를 봤다. 또 도내 쓰레기를 다른 지역으로 보내 처리하느라 평소보다 3배 많은 혈세가 낭비됐다.

기자들의 문제 제기가 꼬리에 꼬리를 물자 논란의 발언이 터지고 말았다. '민간업체 피해는 누가 어떻게 보상할 것이냐'는 질문에 공직자는 '그건 업체가 판단할 문제'라고 선을 그었다. 실언인지 진심인지 알 순없지만 0점짜리 대답인 것만은 확실하다. 쓰레기 반입 저지로 민간업체가 피해를 본다고 하소연한 쪽은 다름아닌 도정이었다. 이제와서 모른척 하는 것은 상대방에 대한 배려도 아니거니와 무책임하다는 인상만 남겨줄 뿐이다. 하고 싶은 말만 하려다 낭패를 본 전형적인 실패 사례다.

기자회견 때 보여준 동복리 주민들 반응도 황당했다. 타협이 안될 때마다 쓰레기 반입을 저지하는 것이 타당하느냐는 질문에 "매번 보도자료로 입장을 냈다"고 답했다. 또 '앞으로도 이렇게 대응할 것이냐'는 질문엔 무응답으로 일관했다. 두 질문에 대한 반응을 종합하면 '타당하니 또 할 수도 있다'로 읽힌다. 원활한 쓰레기 처리에 합의했다고 양측이 한 자리에 모였지만 위태롭게만 보였던 건 바로 이런 이유들 때문이다. 아니나 다를까. 양측이 합의한 지 한 달도 안돼 주민들 실력 행사와 쓰레기 처리난이 재현됐다.

가장 위태로운 건 도민들 인내심이다. 언제까지 이 사태를 참고 견딜 수 있을지 모르겠다. 도민들 인내심이 바닥나도 동복리 시위는 유효할까. 대개의 경우 민심을 잃으면 얻는 것보다 잃는 것이 더 많았다. <이상민 정치경제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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