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도 출항해녀/기억의 기록] (8)일본 시마네현 오키섬을 가다
입력 : 2023. 08. 30(수) 00:00
이태윤 강다혜 기자 hl@ihalla.com
강치 남획·제주 해녀 고용… 日 독도 불법어업 출항지 오키섬
독도 해녀 특별취재팀 이달 3일 日 시마네현 오키섬 방문
일본인에 고용돼 독도 어업 나섰던 제주 해녀 흔적 추적
오키섬 구미마을 다케시마 역사관 어업활동 사진 등 전시
"그 많던 강치는 다 어디로"… 남획을 독도 영유권 근거로

[한라일보] 독도 출항 물질에 나선 제주 해녀들의 집단 거주는 1940년대부터 1970년대까지 왕성하게 이뤄졌다. 독도 어장에서의 어로활동에 관한 기록에 따르면, 제주해녀의 독도 진출은 그보다 앞선 시기인 1930~40년대 일본인에 의해 고용돼 성게 채취 등을 했다고 전해진다. 독도 어장 어업활동은 한국와 일본 간 독도 영유권 분쟁의 주요 쟁점 사항이기도 한데, 일본 시마네현의 오키노시마(오키(隱岐)섬)에는 어민들이 독도를 찾아 강치(바다사자) 포획, 전복, 성게 등을 채취했다는 기록이 남아있다. 본보 특별취재팀은 과거 일본인들에게 고용돼 독도 어업활동에 나섰던 제주 해녀들의 일화와 기록을 추적하기 위해 이달 초 오키섬으로 향했다.

일어로 '다케시마의 영토권 확립 과 어업 안전 조업 확보를'이라는 문구가 적힌 오키섬 사이고항의 대형 홍보탑. 강다혜기자


▶독도와 가장 가까운 일본 영토.. 과거 독도 어장 출항지='다케시마(竹島)는 옛날에도 지금도 오키(隱岐)의 섬'

지난 3일 일본 돗토리현 사카이미나토항에서 출발한 고속선이 시마네현 오키군 오키노시마정(오키노시마·오키섬·오키제도, 이하 오키섬) 사이고항에 도착하자 한눈에 들어선 육교 위엔 이같은 표어가 적힌 현수막이 크게 걸려 있었다. '다케시마'는 일본이 독도를 지칭하는 이름이다. 이어 항구 주차장에는 '다케시마 돌아오라 섬과바다'라고 쓰인 큼지막한 광고탑이, '다케시마의 영토권 확립과 어업 안전 조업 확보를'이라고 쓰인 대형 홍보탑이 눈에 들어왔다. 오키섬은 독도가 자신들의 행정구역에 포함된다고 주장하고 있다.

오키섬은 독도에서 가장 가까운 일본 영토이자 과거 독도에서 불법 어업 활동을 하던 어민들의 출항지다. 오키섬은 일본 시마네 반도에서는 북동쪽으로 약 80㎞ 떨어진 곳, 독도와는 약 158㎞ 떨어진 곳에 위치하고 있다. 면적은 약 242.82㎢다.

취재진은 오키섬의 순수 향토자료가 담긴 오키향토관을 비롯해 다케시마 역사관, 구미항 등이 위치한 고카이촌 구미(久見)마을 등 오키섬 곳곳을 취재했다. 국제적·외교적 시선으로 보면 독도 문제의 진앙지로 해석되지만, 이날 찾은 오키섬 현장은 평화로운 어촌이었다. 이곳에 거주하는 일반인들에게 독도 어장 어업에 대한 질문과 제주 해녀에 대한 질문을 이어갔지만, 알고 있다는 대답은 듣기 어려웠다.

다만 오키섬 서북쪽 고카이촌 구미마을에는 강치 잡이 등 독도 출항 어업 기록과 일본의 '다케시마' 영유권을 주장하는 전시와 흔적, 기록이 집중돼 있었다. 구미마을에서 독도 쪽 바다가 보이는 언덕에 설치된 '죽도지비(竹島之碑)'도, 어민들의 출항지였던 구미항도 이곳에 위치해 있다. 독도에 대한 일본 측의 주장이 담긴 다케시마 역사관도 위치한다. 취재진은 구미마을 소재 다케시마역사관, 구미항 방파제, 죽도지비가 설치된 전망대 등을 찾아 관계자와 일반인들의 이야기를 들었다.

오키섬에 위치한 다케시마역사관.
오키향토관에 전시된 독도 설명.
▶독도 강치잡이 번성 '구미마을'은 어떤 곳?=4일 이른 시각, 우선 오키향토관으로 향했다. 오키향토관은 오키섬 순수 향토자료가 담긴 곳으로, 1970년 10월 시마네현에 의해 유형문화재로 지정됐다. 본래 오키향토관에 죽도 관련 전용 전시관이 있었지만, 오키섬 내 '다케시마 역사관'으로 이전됐다는 관계자의 설명을 들었다.

다케시마 역사관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구미 다케시마 역사관에는 독도 관련 지도와 선전 포스터, 일어·중국어·한국어·영어 등으로 준비된 팸플릿, 독도 관련 일본어와 한국어 자료가 갖춰져 있었다. 역사관에 방문하자 역사관 관계자는 팸플릿을 하나씩 배부해줬는데, "다케시마가 일본 고유의 영토인 것은 역사적으로도 국제법상으로도 분명합니다. 한국은 일방적으로 다케시마를 가져와 불법 점거하고 있습니다. 전후 일관되게 평화 국가로 걸어온 일본은 이 문제의 평화적 해결을 목표로 합니다"라는 문구가 쓰여 있었다.

이날은 과거 일본인들의 독도 어업 활동 역사와 기록물들, '다케시마'의 명칭 변화와 관련된 고지도 기록물들이 전시되고 있었다. 특히 과거 독도로 출항해 강치 잡이 등 어업활동을 하던 일본 어부들의 사진과 기록이 빼곡히 걸려 있었다.

독도 어업활동과 관련된 전시들은 주로 1930~1950년대의 기록들이었다. 독도에서의 어업권 행사 연혁, 독도의 바다사자(강치) 어업 허가자의 변천에 관한 기록을 포함해 독도에서 채취했던, 미역, 전복, 강치의 가격 등이 전시되고 있었다.

기록물 가운데 당시 일본인들에게 고용된 '제주해녀'의 모습이 담긴 사진과 인건비 내역 등 관련 기록도 찾을 수 있었다. 이에 대해선 다음 회차에서 자세히 다룬다.

강치 잡이가 성행했던 구미항.
독도 쪽 바다가 보이는 언덕에 설 치된 죽도지비.
다케시마 역사관에 전시된 독도 어업 기록에는 강치 어업과 관련된 내용들이 주를 이뤘다. 어부들이 그물을 이용해 바다사자(강치)를 잡고 있는 모습이 찍힌 사진, 그 당시 잠수기어업 도구를 활용해 어업활동(=가나기 낚시)을 하고 있는 사람의 모습이 담긴 사진도 있었음.

그 많던 강치는 다 어디로 갔을까. 문제는 이같은 일본의 강치 어업, 사실상 '남획'으로 인해 강치가 멸종했다는 점이다. 일본은 이를 독도의 실효적 지배를 위한 증거 자료로 이용하고 있다. 지난 6월 취재진이 찾았던 울릉도·독도해양연구기지에는 독도 강치가 일본에 의해 1930년부터 1941년까지 독도에서 기름 및 가죽 획득 목적으로 총과 칼로 남획됐으며, 1904년의 경우한 해 동안 약 5000마리가 일본에 의해 남획됐다고 기록됐다. 특히 1950년대 말 독도에 출어한 제주 해녀 김공자 씨가 어린 독도바다사자(강치)를 안고 있는 모습이 담긴 사진도 연구기지에 전시돼 있다.

이에대해 당시 김수희 독도재단 연구부장은 "독도는 원래 사람이 살지 않는 곳이었으며, 강치들의 섬이었다. 일제 강점기 당시 일본인들에 의해 남획된 뒤 멸종이 확인됐다"고 설명했다. 이어 "그런데 제주해녀(김공자 씨)가 새끼 강치를 안고 있는 모습의 사진이 남아있다는 건, 제주해녀가 물질하던 당시에도 독도에 강치가 살고 있었다는 것을 알려주는 것"이라며 "아주 깊은 의미가 담긴 사진"이라고 설명했다.

한편 취재팀은 1940년대 울릉도 출신 남편과 함께 바다를 건너 오키섬에서 물질을 이어간 해녀에 대한 현지인의 증언을 확보할 수 있었다. 이에 대한 자세한 이야기는 9월 13일 보도 예정인 '독도 출행해녀/ 기억의 기록' 9회째 기획 기사에서 다룰 예정이다. 특별취재팀=이태윤 정치부차장·강다혜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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