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상일의 세상읽기]잡스의 두 얼굴
입력 : 2011. 10. 28(금) 00:00
잡스의 전기(傳記)가 화제다. 그는 못 보고 간 책이 그의 아이패드처럼 잘 팔린다고 한다. 플라톤에 의하면, 자식을 낳는 것은 그가 죽을 존재이기 때문이다. 죽음이 다가오는 것을 느끼고, 잡스는 자신의 생을 이야기로나마 남기고 싶었는지 모른다. 혹은 고승이 떠나며 사리(舍利)를 남기듯.

그러나 스님에게는 사리조차도 덧없는 것이다. 그래서 한국불교의 큰 스승인 경허(鏡虛) 스님은 한 톨의 사리도 남기지 않았다. 스님은 그런 식으로 색즉시공을 증거했다. 마치 유마(維摩)의 침묵처럼. 불교에서 유마의 침묵은 백뢰(百雷)의 굉음에 비유된다.

잡스는 말년에 불교에 심취했다. 그러나 그는 선사가 아니다. 사업가였다. 혹은 그 둘 다였다. 어떤 때 보면 그는 모든 것을 비우고 초월한 사람처럼 보였다. 2006년 스탠퍼드 대학 졸업식에서 그 유명한 연설을 할 때의 모습이 그랬다. 그러나 구글과 싸울 때 보면 악귀처럼 달려든다.

잡스의 모순은 인간 지식의 두 얼굴을 반영하는 것처럼 보인다. 인간의 지식은 모순적이다.

소(牛)는 그들의 발견을 공유하지 않는다. 여기 한 줌의 풀이 있다. 그것을 발견한 소가 먼저 뜯어먹어 버리면, 나머지 소는 굶거나 다른 풀을 찾아 나서야 한다. 사람은 다르다. '피타고라스 정리'를 피타고라스와 인류가 공유한다. 칸트에 의하면, 이것이 이성적(理性的) 인간이 소와 다른 점이다.

그러나 인간은 복잡한 존재다. 인간답게만 살지 않는다.

잡스가 만든 아이패드를 세계의 사람이 함께 쓴다. 여기까지는 '피타고라스 정리'를 인류가 공유하는 것과 비슷하다. 그러나 '피타고라스 정리'와 달리, 아이패드에는 지적재산이라는 딱지가 붙어 있다. 그것은 1인이 독차지한다는 표시다. 구글과 애플, 애플과 삼성이 왜 싸우나. 혼자 먹겠다는 것이다. 소처럼.

이들의 특허 분쟁은 '아는 것이 힘'이라는 슬로건을 제대로 실감케 한다. 그것은 마치 근육질의 격투기 선수들이 피 터지게 싸우는 광경을 연상시킨다. 그 분위기는 이성적이기보다 다분히 동물적이다.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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