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상일의 세상읽기]최악의 크리스마스 선물
입력 : 2011. 12. 23(금) 00:00
20세 이상 미혼남녀 837명에게 크리스마스 선물에 대해 물어 보았다. 이들이 꼽은 최악의 선물은 남녀 공히 '종이학 1000개'였다.

종이학 1000개를 접으려면 많은 시간과 정성을 들여야 한다. 그래서 종이학은 애틋한 사랑의 징표(徵表)로 여겨진다. 가수 전영록이 부른 '종이학'이 있고, 류시원과 명세빈이 주연한 드라마 '종이학'도 있다. 카레이서를 꿈꾸는 청년과 부잣집 딸의 엇갈린 사랑을 그린 드라마였다.

그러나 종이학은 싫단다. 요즘 남녀는 정성보다는 다른 것을 받고 싶어한다. 그 다른 것이란 명품 백, 명품 시계 따위이다.

직장인 623명에게도 같은 질문을 던져 보았다. 이들은 가장 받기 싫은 크리스마스 선물로 남녀 공히 '꽃다발'을 꼽았다. '종이학'이 싫다고 한 것과 상통(相通)하는 조사결과다. 한마디로, 마음보다는 돈이라야 한다는 것이다.

피천득 선생이 쓴 수필 '선물'이 있다. 이 아름다운 수필은 이런 말로 시작된다. "꽃은 좋은 선물이다." 요즘 남녀는 말한다. "꽃은 나쁜 선물이다."

피 선생은 이런 말씀도 했다. "양담배를 피는 사람에게 양담배 한 보루를 주는 것은 돈으로 이삼천원 주는 거나 같다." 그 당시 양담배 한 보루 값이 그 정도였던 모양이다. 말씀하신 뜻은 선물은 돈으로 셈할 수 없다는 것이다. 선생의 표현을 빌리면 "선물은 뇌물이나 구제품이 아니"기 때문이다.

마음이 깃들면 단풍 한 잎도 좋은 선물이 될 수 있다. 그런데 요즘 남녀에게는 마음보다 돈이다. 국민소득 2만 달러를 구가(謳歌)하는 시대를 살면서, 선물에 대한 생각은 구제품으로 옥수수 가루 받아 먹던 시절로 회귀하는 현상이다. 마음이 궁핍(窮乏)해져서 그렇다.

최악의 선물은 그렇고, 최고의 선물은 뭘까. 성서에 의하면, 크리스마스는 신이 인류에게 당신 아드님을 선물로 준 사건을 기념하는 날이다. 최고의 크리스마스 선물은 포대기에 싸여 저기 여물통 안에 누워 계시다.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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