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상일의 세상읽기]불의 정신분석
입력 : 2011. 11. 30(수) 00:00
제주시가 정월대보름마다 여는 들불축제가, 축제 전문 매거진 '참살이'가 선정하는 가볼 만한 축제 1위에 뽑혔다. 불보다 더 축제에 어울리는 소재(素材)는 없다. '불의 정신분석'의 저자 바실라르는 이렇게 썼다. "불은 사물을 태울 뿐 아니라 소리지르게 한다." 마침내 달집에 불이 당겨지고 불길이 치솟으면 모인 사람들은 일제히 소리지른다. 환성이다.

조용한 불도 있다. 기억할 것이다. 활활 타는 난로 앞에서, 오직 그 이유 하나만으로 행복했던 시절. 바실라르는 이런 말도 했다. "난로 속에 갇힌 불은 몽상의 주제이며, 휴식에의 초대(招待)다."

이 아름다운 문장에서 필자가 주목하는 곳은 '갇힌 불'이라는 표현이다. 프로이트는 본능의 억압이 문명의 조건이라고 했다. 불과 문명의 관계도 같다. 인류문명이 불의 발명에서 비롯됐다고들 한다. 그러나 문명은 인류가 불을 가둘 수 있게 되면서 시작됐다고 하는 것이 보다 더 정확할 것이다.

사람의 감정은 불과 같다. 난로 속 순한 불 앞에서는 감정도 순해진다. 들불의 격한 불길 앞에서는 감정도 격해진다. 난로 앞에서 행복할 수 있는 것은 불이 일정한 규제 하에 있기 때문이다. 그 규제에서 풀려나는 경우 불은 재앙(災殃)으로 돌변한다. 방화범이 누군가. 불의 해방자다.

노벨상 수상작가인 카네티는 '풀려난 불'의 무서움을 이런 말로 표현했다. "그것이 숲이나 초원이나 도시 전체를 엄습할 때의 난폭성은, 불이 가지는 가장 인상적인 특징 중의 하나다. 불은 모든 것을 삼키려 든다. 불은 결코 포만감(飽滿感)을 느끼지 않는다."

방화범과 들불축제 모두 불을 풀어준다. 그러나 그 둘은 다르다. 들불축제는 사전에 안전조치를 다 해 놓는다. 들불축제의 불은 실은 억제된, '갇힌 불'이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마치 '풀려난 불' 앞에서 마냥 소리지르고 후련해 한다. 이런 경우를 가리키는 오래된 연극용어가 있다. '카타르시스'다.

들불축제는 한 편의 장엄극이다. 연극에 배우가 없을 수 없다. 주연배우는 말할 것도 없이 불이다.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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