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상일의 세상읽기] 안녕, 여러분
입력 : 2011. 12. 28(수) 00:00
전북에 사는 40대 여성 A씨가 국가를 상대로 민사소송을 냈다. 물경(勿驚) 7조7억7000억원이 걸린 소송이었다. 대법원이 펴낸 '2010년 사법연감'에도 실린 '진짜 있었던' 일이다. A씨는 주장했다. "대한민국은 나의 기도(祈禱) 에너지로 정치·경제·사회·문화가 발전하는데 한 번도 보상이 없다."

우스운가. 구워지는 고등어 앞에서 소줏잔을 비우며 국가와 민족을 고래고래 논할 때 우리도 약간씩은 A씨가 되곤 한다.

양자(楊子)가 "천하에 도움이 된다 해도 나는 정강이털 하나도 뽑아 주지 않겠다"고 했던 취지를 이따금 음미해 보곤 한다. 그런 양자를 맹자는 '자기만 위하는(爲我)' 위인이라고 비난했다. 그러나 양자도 그런 염치없는 말을 했던 이유가 있다.

때는 전국시대였다. 모두가 천하를 구한다고 나서는 바람에 천하가 더욱 어지러웠다. 그러니 차라리 각자 자기만 위하면 천하가 진정될 것이다. 양자는 그리 생각했다.

그러는 것은 공민으로서 직무유기(職務遺棄)다. 그것을 누구 모르는가. 그러나 모든 주장은 일리를 말할 뿐이다. 양자도 그랬다.

일리를 진리의 전부인 양 글을 써야 하는 자괴(自愧)가 늘 마음에 있었다. 그래서 17세기 어느 수녀가 남겼다는 다음과 같은 기도문을 접했을 때는 자신도 모르게 탄식이 흘러나왔다.

"주님, 주님께서는 제가 늙어가고 있고/언젠가는 정말로 늙어 버릴 것을 저보다 더 잘 알고 계십니다./저로 하여금 말 많은 늙은이가 되지 않게 하시고/특히 아무 때나 무엇에나 한마디 해야 한다고 나서는/치명적인 버릇에 걸리지 않게 하소서./모든 사람의 삶을 바로잡고자 하는 열망으로부터 벗어나게 하소서."

그런 터무니없는 열망으로 빗나간 대목이 있었다면-틀림없이 있었을 것이다. 그것도 아주 자주-부디 해량(海諒)을 베풀어 주시기를.

2005년 3월1일부터 시작한 '세상읽기'의 대미(大尾)를 이보다는 더 멋진 인사말로 장식하고도 싶었다. 그러나 진심은 소박하게 전하는 것이 더 나을 듯싶다. 독자 여러분, 안녕히 계십시오. <문학평론가>
기사에 대한 독자 의견 (4 개)
이         름
이   메   일
8298 왼쪽숫자 입력
비밀번호 삭제시 필요
유채꽃향기~ 12-28 11:20삭제

박수칠때 떠나라...
인제 편안히...
요요 12-28 11:09삭제
선생님도 안녕히 계십시오.

`일리를 진리의 전부인 양 글을 써야 하는 자괴`가 맘에 있으셨다지만 독자들은 늘 좋은글에 감탄하고 감사해 했을겁니다. pEACE~!
재경 12-28 10:27삭제
그동안 좋은 글 감사드립니다.
앞으로 다른곳에서라도, 좋은 글 볼수있는 자리가 계속 있기를 바랍니다. :)
12-28 09:23삭제
마지막 세상읽기라구요?
선생님 세상읽기를 읽는 재미로 한라일보를 열곤 했는데,
이제 어떡하라고...
다른 코너 만드실 거지요?
기다리겠습니다.
팬심을 외면하는 것도 '죄'입니다.
송상일의 세상읽기 주요기사더보기

기사 목록

한라일보 PC버전
검색 입력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