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상일의 세상읽기]마태오 효과
입력 : 2011. 10. 07(금)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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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신교에서는 '마태', 천주교는 '마태오'로 부른다. 필자는 공동번역성서에 따라 후자로 쓴다. 불특정 독자를 상대로 이런 글을 쓸 때는 여간 성가시지가 않다. 양측이 의논해 용어들을 통일해 줬으면 좋겠다.
그 마태오 복음 25장 29절에 돈놀이에 관한 이야기가 나온다. 주인이 나눠준 원금으로 이자를 늘린 종은 칭찬을 듣고, 땅에 묻어 고스란히 원금만 지킨 종은 쫓겨난다. 이때 주인이 말한다. "가진 자는 더 받아 넉넉해지고, 가진 것 없는 자는 가진 것마저 빼앗길 것이다."
거기서 '마태오 효과'라는 말이 만들어졌다. 뜻은 부익부 빈익빈과 대동소이하다. 예컨대 부잣집 아들과 가난한 집 아들이 있다. 성공의 기회가 어느 쪽에 더 많을까. 당연히 부잣집 아들 쪽이다. 그 결과는 가진 자의 호순환, 없는 자의 악순환이다.
부잣집 아들이 꼭 능력이 있어 성공하는 것도 아니다. 설사 있다고 해도 그 능력은 그가 타고난 것이 아니다. 키워진 것이다. 고액과외, 해외연수 등등 유리한 환경에 의해서(한마디로, 돈에 의해서). 이 아이들은 당첨된 복권을 손에 쥐고 태어난다.
가난한 집 아이가 열심히 공부해서 혹은 열심히 일해서 성공하는 사례도 물론 있다. 그런 이야기는 늘 감동의 물결을 선사한다. 그러나 그런 경우는 예외적일 뿐 아니라 과장(誇張)되기가 일쑤다. 누군가의 말처럼, 가난한 집 아이는 꿈도 가난하게 꾼다. 형편이 그럴 수밖에 없다. 현실에서는 빈부의 대물림이 단연 대세다.
덩달아, 제도까지도 '마태오 효과'를 후원한다. 부자들의 세금을 깎아주고 그 대신에 서민복지를 위한 지출은 줄였다고 쓴소리를 듣는 새해 예산안이 그런 경우다.
끝으로, 밝히고 가는 것이 좋을 듯싶다. 마태오의 문제 구절에서 '가진 자'는 믿음을 가진 자다. 그것을 돈놀이에 비유하자면, 믿음은 원금이고 그것을 전파해 신자가 느는 것은 믿음이 이자를 치는 거나 같다. 그러나 전교하지 않는 나 홀로 믿음은 장롱 속 현금과 같다. 그런 돈은 이자를 못 친다. 이 모든 이야기는 결국 전교하라는 권고다. 부익부 빈익빈의 경제학과는 거리가 먼 말씀이다.
<문학평론가>
그 마태오 복음 25장 29절에 돈놀이에 관한 이야기가 나온다. 주인이 나눠준 원금으로 이자를 늘린 종은 칭찬을 듣고, 땅에 묻어 고스란히 원금만 지킨 종은 쫓겨난다. 이때 주인이 말한다. "가진 자는 더 받아 넉넉해지고, 가진 것 없는 자는 가진 것마저 빼앗길 것이다."
부잣집 아들이 꼭 능력이 있어 성공하는 것도 아니다. 설사 있다고 해도 그 능력은 그가 타고난 것이 아니다. 키워진 것이다. 고액과외, 해외연수 등등 유리한 환경에 의해서(한마디로, 돈에 의해서). 이 아이들은 당첨된 복권을 손에 쥐고 태어난다.
가난한 집 아이가 열심히 공부해서 혹은 열심히 일해서 성공하는 사례도 물론 있다. 그런 이야기는 늘 감동의 물결을 선사한다. 그러나 그런 경우는 예외적일 뿐 아니라 과장(誇張)되기가 일쑤다. 누군가의 말처럼, 가난한 집 아이는 꿈도 가난하게 꾼다. 형편이 그럴 수밖에 없다. 현실에서는 빈부의 대물림이 단연 대세다.
덩달아, 제도까지도 '마태오 효과'를 후원한다. 부자들의 세금을 깎아주고 그 대신에 서민복지를 위한 지출은 줄였다고 쓴소리를 듣는 새해 예산안이 그런 경우다.
끝으로, 밝히고 가는 것이 좋을 듯싶다. 마태오의 문제 구절에서 '가진 자'는 믿음을 가진 자다. 그것을 돈놀이에 비유하자면, 믿음은 원금이고 그것을 전파해 신자가 느는 것은 믿음이 이자를 치는 거나 같다. 그러나 전교하지 않는 나 홀로 믿음은 장롱 속 현금과 같다. 그런 돈은 이자를 못 친다. 이 모든 이야기는 결국 전교하라는 권고다. 부익부 빈익빈의 경제학과는 거리가 먼 말씀이다.
<문학평론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