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상일의 세상읽기]날마다 솟는 성산
입력 : 2011. 09. 28(수) 00:00
사진작가 서재철씨는 그의 작품집에 이렇게 제목을 붙였다. '날마다 솟는 성산'.

통상 성산일출봉이라고 한다. '성산' 두 글자는 떼어 버리고 그냥 일출봉으로 부르기도 한다. 그러나 '성산'이라고 해야 웅장한 성채(城砦)를 닮은 산세의 제맛이 우러난다.

화가 모네는 말년에 르앙 대성당의 길 건너 이층에 작업실을 차렸다. 그는 그 곳에 두 달여를 머물며 대성당을 그리고 또 그렸다. 그날그날의 기상에 따라서, 같은 하루라도 시간에 따라서 대성당은 흰빛, 황금빛, 잿빛, 아청빛 등으로 물들었다. 그 결과 모네의 화폭에는 빛들의 향연이 펼쳐지게 된다.

서재철씨는 성산을 찍은 세월이 40여년이다. 철마다, 다른 방향에서, 멀리서, 가까이서 담아낸 성산은 햇빛 속에서, 여명 속에서, 황혼 속에서, 해무(海霧) 속에서 매번 새롭다. 중국의 변검술사가 얼굴을 바꾸듯 산은 매번 다른 모습을 하며 거기에 서 있다. 책의 제목에 쓰인 '날마다 솟는'이라는 시적인 형용구는 그 점에서 매우 사실적인 표현인 것이다.

언젠가 필자는 서재철씨를, 수도사가 금욕을 하듯 기교를 아끼는 작가라고 썼다. 테크닉이 부족하다는 의미는 물론 아니다. 오히려 그것은 필자 식 극찬의 수사(修辭)다.

노자에 의하면, 대직(大直)이 대교(大巧)다. 필자가 금욕 운운했던 것은 노자의 기교 없는 기교론을 염두에 둔 이야기였다. 그 무기교의 기교 때문에, 서재철씨의 성산은 극도의 다채로움 중에서도 성산 본연(本然)의 자태를 잃지 않을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소위 기교주의 작가들은 자신의 기교로써 풍경과 싸워 이기려고 한다. 그 결과, 기교가 뛰어날수록 거기에 찍힌 풍경은 낯설게 느껴진다. 아름답긴 하지만 왠지 제주도 풍경답지 않는 그림이 되고 마는 것이다.

이 기회에, 평소 해 본 생각을 하나 덧붙인다. 좋은 개발행정은 좋은 사진작가의 눈을 가져야 한다는 것이 필자의 소견이다. 사진처럼 개발도 자연과 싸워 이기려고 해서는 안 된다. 좋은 개발은 이럴 것이다. 개발을 하더라도 개발의 티가 나지 않게 하는 것.

<문학평론가>
기사에 대한 독자 의견 (0 개)
이         름
이   메   일
8298 왼쪽숫자 입력
비밀번호 삭제시 필요
송상일의 세상읽기 주요기사더보기

기사 목록

한라일보 PC버전
검색 입력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