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상일의 세상읽기] 문 선생의 시 한 수
입력 : 2011. 09. 21(수) 00:00
요즘 필자네는 창문을 못 열고 산다. 길 건너에 22층 호텔을 짓는데, 공사장의 먼지와 소음이 지독하다. 아내는 시골 폐가(廢家)라도 빌려 2년쯤 살다가 오자 조른다. 오늘도 그 지독한 건설 소음과 싸우며 필자가 읽고 있는 것은 '허물어진 집'이다.

문충성 시인이 새 시집을 냈다. 시집 제목이 '허물어진 집'이다. 당장 필자를 사로잡은 시는 '제주대학교 참나무 한 그루 서서 죽다'다. 태풍 애니 때 이야기다. "태풍에 모두 쓰러진 줄 알았다. 그러나/길가에 한 그루만 이름 없이/허리 꺾인 채 하늘 베고/서서 죽었다."

서서 죽다. 순간 필자의 뇌리(腦裡)가 하얘지며 외마디의 소리가 종소리처럼 울렸다. "좌탈입망(坐脫立亡)이구나!"

법력(法力) 높은 큰스님이 꼿꼿이 앉거나 서서 죽는 것을 일컫는 불교 용어다. 중국 선종의 제3조 승찬(僧璨) 스님은 뜰을 거닐다 나뭇가지를 잡고 서서 입적(入寂)했다. 서서 죽다. 이런 격조(格調)의 시적 비유를 필자는 아직 만난 적이 없다.

미국 시인 조이스 킬머의 '나무'는 만인의 애송시다. 그는 나무를 기도(祈禱)하는 사람에 비유했다. "온종일 하느님을 우러러보며/잎이 무성한 팔을 들어 기도하는 나무"라고 읊었다.

격조에서 킬머의 비유는 문 선생의 그것과 게임이 안 된다. 결코 과언이 아니다. 기도하는 사람처럼 두 팔 벌려 서 있는 나무와, 생사를 다 버린 고승처럼 '여여(如如)히' 서서 죽은 나무 중에서, 어느 쪽의 위엄이 더 무겁게 느껴지는가. 그러나 부디 오해하지 말기를. 필자는 종교를 논하는 것이 아니다. 문학 이야기를 하는 것이다.

문 선생의 서서 죽은 참나무 이야기는 다음과 같이 끝난다. "어느 날/가서 보았다/아무것도 없었다 톱에 잘려 나간 그루터기뿐/학생들 오가지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역설(逆說)이다. 나무는 죽고, 잘리고, 빈 자리를 남기고, 그리고 한 편의 시가 됐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것이 아니다.

누구에게나 있을 것이다. 멀리 가 버렸으나 한 편의 시가 돼 마음에 머무는 그 누군가가.

<문학평론가>
기사에 대한 독자 의견 (1 개)
이         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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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중 09-21 19:18삭제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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