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상일의 세상읽기]밥은 평등, 옷은 차등?
입력 : 2011. 09. 16(금)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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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면적 무상급식이냐 선별적 무상급식이냐로 서울시가 큰 소동을 치렀다. 그것을 계기로 오세훈은 낙마(落馬)하고, 안철수가 떴다.
막 태어난 그리스도교도 서울시와 비슷한 문제에 직면했던 모양이다. 사료(史料)는 사도 바울이 쓴 다음과 같은 편지다. "주님의 몸을 분별없이 먹고 마시는 사람은 그렇게 먹고 마심으로써 자기자신을 단죄하는 것이다."(고린토 전서 11장 29절)
여기서 '주님의 몸'은 신자들이 나눠 먹는 성찬(聖餐)의 음식을 가리킨다. 성서학자 타이센에 의하면, 당시 부자들은 제몫을 따로 푸짐하게 챙겨 와서 가난한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먹었다. 위의 구절은 그런 자들에게 사도가 '생각이 있게' 먹으라고 꾸짖은 대목이다. 이런 꾸중 말도 했다. "각각 자기 집이 없어서 거기에서 먹고 마시는 것인가? 아니면 하느님의 교회를 멸시하고 가난한 사람들을 부끄럽게 만들려고 그러는 것인가?"(고린토 전서 11장 22절)
선별적 무상급식의 문제가 그것이었다. 급식을 먹는 가난한 집 어린이들을 '부끄럽게' 만드는 것. 그로 인해 입게 되는 마음의 상처는 배가 고픈 것보다 더 어린이 건강을 해칠 수 있다. 더군다나 어린 시절에 입은 마음의 상처는 평생의 병이 된다.
급식 소동이 끝나자 이번에는 교복자율화가 문제다. 필자의 생각을 물으면 전면적 무상급식은 찬성, 교복자율화는 반대다. 찬반은 사람에 따라 다를 수 있다. 그러나 누구든 그 둘 다를 찬성하는 것은 필자는 이해하기 어렵다. 전면적 무상급식과 교복자율화는 이념적으로 상충(相衝) 관계이기 때문이다.
선별적 무상급식에 반대하는 이유는 그것이 교내 빈부차를 드러내기 때문이다. 그런 이유라면, 교복자율화야말로 있는 집 자녀와 없는 집 자녀를 더욱 확실히 드러낼 것이다. 선별적 무상급식을 반대하며 교복자율화를 주장하는 것은 당착(撞着)이다.
진보와 보수는 각기 명분과 핑계를 가진다. 거기까지는 괜찮다. 그러나 진보든 보수든 정책에-예컨대 먹는 밥과 입는 옷 사이에-논리적 일관성은 갖추고 우겨도 우겼으면 좋겠다.
<문학평론가>
막 태어난 그리스도교도 서울시와 비슷한 문제에 직면했던 모양이다. 사료(史料)는 사도 바울이 쓴 다음과 같은 편지다. "주님의 몸을 분별없이 먹고 마시는 사람은 그렇게 먹고 마심으로써 자기자신을 단죄하는 것이다."(고린토 전서 11장 29절)
선별적 무상급식의 문제가 그것이었다. 급식을 먹는 가난한 집 어린이들을 '부끄럽게' 만드는 것. 그로 인해 입게 되는 마음의 상처는 배가 고픈 것보다 더 어린이 건강을 해칠 수 있다. 더군다나 어린 시절에 입은 마음의 상처는 평생의 병이 된다.
급식 소동이 끝나자 이번에는 교복자율화가 문제다. 필자의 생각을 물으면 전면적 무상급식은 찬성, 교복자율화는 반대다. 찬반은 사람에 따라 다를 수 있다. 그러나 누구든 그 둘 다를 찬성하는 것은 필자는 이해하기 어렵다. 전면적 무상급식과 교복자율화는 이념적으로 상충(相衝) 관계이기 때문이다.
선별적 무상급식에 반대하는 이유는 그것이 교내 빈부차를 드러내기 때문이다. 그런 이유라면, 교복자율화야말로 있는 집 자녀와 없는 집 자녀를 더욱 확실히 드러낼 것이다. 선별적 무상급식을 반대하며 교복자율화를 주장하는 것은 당착(撞着)이다.
진보와 보수는 각기 명분과 핑계를 가진다. 거기까지는 괜찮다. 그러나 진보든 보수든 정책에-예컨대 먹는 밥과 입는 옷 사이에-논리적 일관성은 갖추고 우겨도 우겼으면 좋겠다.
<문학평론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