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상일의 세상읽기]안철수의 엔딩 장면
입력 : 2011. 09. 09(금) 00:00
아프리카 실룩 부족의 왕은 여자를 여럿 거느린다. 여자들은 왕의 아내이자 부족의 스파이다. 왕의 정력이 쇠약해졌다고 느끼면 여자들은 부족의 원로들에게 이 사실을 보고한다. 그러면 원로회의는 쇠약해진 왕을 외진 오두막으로 모셔가 목졸라 죽이고, 새로 싱싱한 왕을 뽑아 앉힌다. 프레이저의 고전이 된 책 '황금지(黃金枝)'에 소개돼 있는 이야기다.

2011년 가을. 생산력은 고갈(枯渴)됐는데 여전히 탐욕스럽기만 한 기존 정치권에 실망한 국민들은 싱싱한 정치의 재목(材木)을 찾아낸다. 그 재목이 누군지는 다 안다. 안철수 그 사람이다.

그러나 늙은(낡은) 정치권은 여전히 정신 못 차린 모습이다. 한나라당은 "(철수가 나오면) 영희도 나오겠네" 식의 저급한 농담 따먹기로 넘겨 보려고 했다. 그게 안 되니까 "검증" 운운하며 협박했다. 그러나 당사자나 더욱이 국민에게 그런 협박이 먹힐 리가 만무다. "악성 코드가 백신을 검증하겠다는 격"이라는 비웃음만 한껏 샀다.

구태의 답습(踏襲)은 민주당도 나을 것 없었다. 그런 와중에 민주당은 '단일화'로 꾀어 그의 50% 지지율을 거저 먹을 궁리나 하고 앉아 있었다.

사태를 직시한 정치인도 소수지만 있다. '안 바람'을 폄하(貶下)하는 당을, 원희룡 의원은 "그런 식이니 우리가 국민들로부터 욕을 먹는 것"이라며 책망했다.

정치권의 안철수 폄하 책동은 그들이 아직도 정신을 못 차렸음을 스스로 고백하는 꼴이다. 국민이 안철수에게 열광하는 이유를 딱하게도 그들은 모르고 있다. 국민은 다 아는데.

어쨌든 일단은 잘 끝난 것 같다. 그가 만든 백신을 무료로 내려받아 쓰고 있는 필자는 개인적으로 그의 출마 포기(抛棄)에 안도한다. 역사에서 지겹게 되풀이돼 오는 일이다. 저렇게 해맑은 그도 언젠가 낡아지면, 국민은 그의 목에도 올가미를 걸려고 덤빌 것이다.

홀연히 등장해 마을을 평정한 정의의 건맨은, 남아서 보안관이 돼 달라는 청원을 뿌리치고 유유히 석양 속으로 말을 달린다. 요며칠 지켜보며 뇌리에 떠오른 안철수의 엔딩 장면이다.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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