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상일의 세상읽기]'타인종 효과'의 난센스
입력 : 2011. 09. 02(금) 00:00
대구세계육상선수권대회 첫날 여자 마라톤은 금, 은, 동이 모두 케냐 선수였다. 관중과 TV 시청자는 그들이 순서대로 도착하는 것을 지켜보았다. 그런데 선수들이 국기를 들고 운동장을 돌 때 보니 누가 금이고 은, 동인지 알 수가 없었다. 그 얼굴이 다 그 얼굴로 보였다. 소위 '타인종(他人種) 효과' 때문이다.

신문에서 이런 기사를 읽고 생각이 났다. 미국 국무장관을 지낸 조지 슐츠의 '회고록'에 소개된 비화(秘話)다.

1983년 CIA는 남미(南美) 수리남의 좌익정권을 전복시킬 목적으로 '한국인 특공대'의 투입을 계획한 적이 있었다. 하필 '한국인 특공대'인 이유는, 한국인이 수리남 원주민처럼 보인다는 것이었다. 한국인과 수리남 원주민은 서로가 다르다는 것을 몰라볼 리 없다. 그러나 미국인들의 눈에는 두 인종이 구분할 수 없게 닮아 보였다.

어이없지만, 있을 수 있는 이야기다. 우리도 흑인을 보면 모두가 같아 보인다. 물론 흑인들끼리는 용케도(!) 서로를 구분한다.

'타인종 효과'는 때로 끔찍한 재앙(災殃)이 되기도 한다. 저명한 언어학자인 하야카와 교수는 일본계 미국인이다. 그는 캐나다에서 태어나 미국에서 자랐다. 일본에는 간 적도 없고, 일본어도 몰랐다. 아내는 백인이었다. 그러나 일본의 하와이 침공 후, 그는 다른 미국인들로부터 갖은 모욕을 당해야 했다. 그들은 적대적 일본인과 우호적 일본인을 구별할 수가 없었다.

그 자신이 '타인종 효과'를 뼈저리게 겪었던 하야카와 교수는 그것이 야기(惹起)하는 난센스를 이런 예를 들어 보여준다.

사람들은 말한다. 유태인은 돈만 안다고. 그러나 비(非)유태인 중에도 돈만 아는 사람이 있다. 그 사람들에 의하면 그는 '유태인다운' 비유태인이다. 돈을 모르는 유태인도 있다. 그는 '유태인답지 않은' 유태인이다.

자문해 보자. 전라도, 경상도, 제주도 근성을 비방(誹謗)하거나 야유(揶揄)함으로써 우리도 똑같이 '타인종 효과'의 난센스를 범하고 있지 않나.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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