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상일의 세상읽기]그대, 왜 한류가 미운가
입력 : 2011. 08. 26(금)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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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도쿄에서 반(反) 한류 시위가 또 있었다. 두 번째인데, 전번보다 더 많은 사람이 모였다. 숫자만 는 것이 아니다. 색깔도 달라졌다. 가장 열심인 것은 역시 일본 우익(右翼)이다. 그러나 많은 보통 일본국민이 시위에 동참했다. 이런 현상을 어떻게 설명할까.
이럴 때는 제삼자의 시선이 판단을 돕는다. 일본의 반 한류에 대해, 중국 인민일보는 "섬나라의 자의식이 감정적 행동으로 나타난 것"이라고 논평했다. 이런 지적도 했다.
과거에 한국도 '일류(日流)'에 저항한 적이 있었다. 그러나 '일류'에 대한 한국의 반감은, 한류에 대한 일본의 반감과 내용이 다르다. '일류'에 대한 한국의 반감은 일본을 따라잡는 동력이 됐다. 그러나 일본의 반 한류는 배척만 한다.
지금 일본은 중국에게는 밀리고 한국에게는 쫓기는 형국이다. 그래서 일본 국민은 불안하다. 일본이 과거처럼 진취적이었다면, 이럴 때 그들은 중국과 겨루려고 했을 것이다. 그럴 자신이 없어 찾아낸 해법은 '거짓 원인의 오류(誤謬)'로 도피하는 것이다.
'거짓 원인의 오류'는 원인을 잘못 판단하여 발생하는 오류다. 예컨대 다음과 같이 추론하는 경우다. 축구 경기에서, 한 명이 퇴장을 당한 후 남은 선수들이 열심히 뛰어 팀이 승리했다. 고(故)로 경기에서 승리하기 위해서는 팀의 한 명이 퇴장을 당해야 한다.
이런 논리적 오류는 웃고 넘어갈 수가 있다. 그러나 다음 경우는 그럴 수 없다. 이 경우 오류는 논리적이기보다 심리적이다.
LA 흑인폭동 때다. 폭도들은 백인 부자들이 사는 비버리힐즈는 감히 어쩌지 못하고, 애꿎은 한인상점을 불지르고 약탈(掠奪)했다. 그 광경을 경찰은 보고만 있었고. 흑인들은 자신들이 못 사는 진짜 원인이 있음직한 저쪽은 건드리지 못하고 만만한 이쪽에서 가짜 원인을 찾아내 공격을 감행했다.
이 경우도 다르지 않다. 중국은 어렵고 한국은 만만한가. 그들은 중국에게 느끼는 두려움과 굴욕을 반 한류로 잊으려고 한다. 그것은 논리적으로 오류이고, 심리적으로 비겁하다.
<문학평론가>
과거에 한국도 '일류(日流)'에 저항한 적이 있었다. 그러나 '일류'에 대한 한국의 반감은, 한류에 대한 일본의 반감과 내용이 다르다. '일류'에 대한 한국의 반감은 일본을 따라잡는 동력이 됐다. 그러나 일본의 반 한류는 배척만 한다.
지금 일본은 중국에게는 밀리고 한국에게는 쫓기는 형국이다. 그래서 일본 국민은 불안하다. 일본이 과거처럼 진취적이었다면, 이럴 때 그들은 중국과 겨루려고 했을 것이다. 그럴 자신이 없어 찾아낸 해법은 '거짓 원인의 오류(誤謬)'로 도피하는 것이다.
'거짓 원인의 오류'는 원인을 잘못 판단하여 발생하는 오류다. 예컨대 다음과 같이 추론하는 경우다. 축구 경기에서, 한 명이 퇴장을 당한 후 남은 선수들이 열심히 뛰어 팀이 승리했다. 고(故)로 경기에서 승리하기 위해서는 팀의 한 명이 퇴장을 당해야 한다.
이런 논리적 오류는 웃고 넘어갈 수가 있다. 그러나 다음 경우는 그럴 수 없다. 이 경우 오류는 논리적이기보다 심리적이다.
LA 흑인폭동 때다. 폭도들은 백인 부자들이 사는 비버리힐즈는 감히 어쩌지 못하고, 애꿎은 한인상점을 불지르고 약탈(掠奪)했다. 그 광경을 경찰은 보고만 있었고. 흑인들은 자신들이 못 사는 진짜 원인이 있음직한 저쪽은 건드리지 못하고 만만한 이쪽에서 가짜 원인을 찾아내 공격을 감행했다.
이 경우도 다르지 않다. 중국은 어렵고 한국은 만만한가. 그들은 중국에게 느끼는 두려움과 굴욕을 반 한류로 잊으려고 한다. 그것은 논리적으로 오류이고, 심리적으로 비겁하다.
<문학평론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