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상일의 세상읽기]이경서씨의 난초사진
입력 : 2011. 08. 17(수) 00:00
이경서씨는 사진작가다. 필자의 거실에 커다랗게 걸린 그의 사진은 윗세오름에서 내리 찍은 겨울 한라산이다. 어스름 속에 널따랗게 드러난 구상나무 군락지는 마치 월면(月面) 풍경 같다. 그 을씨년스러움이 필자는 좋다.

풍경도 찍지만, 그가 주로 찍는 것이 야생란이다. 사진만 찍는 것이 아니다. 그가 찾아내 그의 이름이 학명이 된 신종도 9종이나 된다.

그가 최근에 책을 한 권 냈다. 역시나 책 제목이 '새로운 한국의 야생란'이다. '새로운'이라는 형용사는 신종만 모았다는 뜻이 아니라 '이런 책은 처음'이라는 선언이다. 펼쳐서 보니, 그럴 만했다.

필자는 식물을 모른다. 그러나 조이스 킬머의 이런 시를 좋아한다. "나는 생각한다, 나무처럼 사랑스러운 시(詩)를/결코 볼 수 없으리라고."

나무가 시면, 꽃은 노래다. 책에 실린 꽃들을 들여다보고 있자니, 식물을 모르는 필자도 어느덧 노래하는 자연의 시흥(詩興)에 젖어든다.

책은 꽃마다 찍은 곳과 때를 밝히고 있다. 놀라워라. 이 모든 것을 일일이 손수 셔터를 눌러 카메라에 담았다는 뜻이다. 자료사진을 모아 엮은 '도감(圖鑑)'류와 다른 점이다. 이 책은 어엿이 저자가 있는 '작품집'이다.

한라산 야생란이 주류지만, 백두산에서 찾아낸 것도 여럿 실렸다. 이것들을 찍기 위해 저자는 서른 번이나 백두산을 올랐다고 했다. 관절을 다쳐 고생하는 근황(近況)이 생각났다. 필자는 지금 저자의 관절과 바꾼 사진들을 보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필자가 이 글을 써야 했던 이유는 그런 것과도 또 다른 감회 때문이다. 서문에서 저자는 말하고 있었다. "한반도가 양분되어 북쪽에서 자라는 종은 조사를 하지 못했다. 타국을 경유하여 백두산에서 자생하는 북방계 난초들을 찾아보는 것으로 만족할 수밖에 없었던 현실이 안타까울 뿐이다."

북한의 야생란을 싣지 못한 것은 이 책의 어쩔 수 없는 한계다. 그러나 그래서 기록적으로는 더 값진 책이 됐다. 바로 그 한계로 인해, 이 책은 민족의 비극까지도 담아내고 있기 때문이다.

<송상일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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