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상일의 세상읽기]도쿄의 반(反)한류
입력 : 2011. 08. 12(금)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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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의 소싯적에는 궐기대회, 웅변대회가 자주 열렸다. 6.25 상흔이 아직 다 아물지 않은 시절이었다. 분발해야 할 일이 많았다. 북진통일-'평화통일'은 잡혀들어가는 금기어(禁忌語)였다-의 고취에서부터 쥐잡기 캠페인에 이르기까지 대회를 여는 구실도 가지가지였다.
필자보다 두엇 손위인 ㅎ은 '웅변대장'이었다. 지금은 헐린 제주극장-관덕정 근처 골목 안에 있었다-에서 열린 국산품 애용 웅변대회에서 ㅎ이 열변하던 모습이 생각난다. ㅎ은 외쳤다. 온국민이 애용하면 우리도 양질의 국산품을 생산할 수가 있다고. 럭키치약을 보라. 거품도 잘 나고, 미제 치약과 견줘도 절대로 뒤지지 않는다. 쓸만한 국산품의 사례로 들 것이 치약 하나밖에 없었던, 그 때는 그런 시절이었다.
오래도록 그랬다. 필자가 신문기자가 돼 난생 처음으로 해외취재를 나갔던 1980년, 인도네시아의 자카르타 공항에서 시내로 들어가는 도로변에 커다랗게 세워진 '미원' 광고판을 보고 뿌듯했던 순간을 아직도 기억한다. 그 나라에서는-그 나라에서만- 국산 '미원'이 일산 '아지노모도'와 당당히 자웅(雌雄)을 겨루고 있었다.
그랬던 나라가 자동차와 반도체와 TV와 냉장고와 스마트폰을 유럽과 미국에 내다 팔고, '소녀시대' '슈퍼주니어'까지 '설쳐대니', 눈꼴사나울 수도 있다. 급기야는 일본 도쿄 시내에서 한류에 반대하는 시위가 벌어지는 지경까지 됐다. 시위 참가자는 말했다. "한국의 손에서 후지TV를 되찾기 위해 모였다"고. 후지는 한류를 많이 소개하는 일본 TV다.
일본 제국주의가 우리 문화를 침탈(侵奪)했던 과거를 새삼 거론하지는 않으련다. 한류로부터 자국의 대중문화를 지키려는 그들의 위기감과 충정은 이해되나, 양담배 배척하고 국산품 애용하자며 궐기대회를 열던 우리네 과거가 생각나 쓴웃음을 짓게 된다.
이렇게 말하는 필자는 결코 쇼비니스트가 아니다. 문화는 주고 받는 거라고 철석같이 믿는 필자는 한류의 무차별식 마케팅을 기회마다 경고해 왔다. 그래도 이건 아니다. 세계시장에 '일류(日流)'를 팔아 지금의 일본이 됐다. 북한처럼 닫고 살 작정인가. 일본의 한류 거부는 일본의 자기부정이다. <문학평론가>
오래도록 그랬다. 필자가 신문기자가 돼 난생 처음으로 해외취재를 나갔던 1980년, 인도네시아의 자카르타 공항에서 시내로 들어가는 도로변에 커다랗게 세워진 '미원' 광고판을 보고 뿌듯했던 순간을 아직도 기억한다. 그 나라에서는-그 나라에서만- 국산 '미원'이 일산 '아지노모도'와 당당히 자웅(雌雄)을 겨루고 있었다.
그랬던 나라가 자동차와 반도체와 TV와 냉장고와 스마트폰을 유럽과 미국에 내다 팔고, '소녀시대' '슈퍼주니어'까지 '설쳐대니', 눈꼴사나울 수도 있다. 급기야는 일본 도쿄 시내에서 한류에 반대하는 시위가 벌어지는 지경까지 됐다. 시위 참가자는 말했다. "한국의 손에서 후지TV를 되찾기 위해 모였다"고. 후지는 한류를 많이 소개하는 일본 TV다.
일본 제국주의가 우리 문화를 침탈(侵奪)했던 과거를 새삼 거론하지는 않으련다. 한류로부터 자국의 대중문화를 지키려는 그들의 위기감과 충정은 이해되나, 양담배 배척하고 국산품 애용하자며 궐기대회를 열던 우리네 과거가 생각나 쓴웃음을 짓게 된다.
이렇게 말하는 필자는 결코 쇼비니스트가 아니다. 문화는 주고 받는 거라고 철석같이 믿는 필자는 한류의 무차별식 마케팅을 기회마다 경고해 왔다. 그래도 이건 아니다. 세계시장에 '일류(日流)'를 팔아 지금의 일본이 됐다. 북한처럼 닫고 살 작정인가. 일본의 한류 거부는 일본의 자기부정이다. <문학평론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