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상일의 세상읽기]글쓰기의 어려움
입력 : 2011. 08. 05(금) 00:00
'침대는 가구가 아닙니다' 하는 침대 광고가 있었다. 이 광고 탓에 소동(騷動)이 난 적이 있다. 초등학생들에게 '다음 중 가구를 고르라'는 문제를 냈더니, 상당수가 '침대'에 ×를 한 것이다.

학부모의 항의가 빗발쳤다. 침대 회사는 급기야 광고 문구를 바꿔야 했고, 자녀들은 하나를 틀리고 둘을 배울 기회를 잃어 버렸다. 역설(逆說)의 묘미를 배울 기회도 함께 사라졌다.

이렇게 말하는 필자도 그다지 위트가 풍부한 편은 못 된다. 이런 기억이 있다.

'솔직히 말해서 ㅂ콘은 백원입니다'는 광고가 있었다. 그 아이스크림콘이 지금도 생산되는가는 알지 못한다. 생산이 되고 있다면 백원보다 훨씬 더 비싼 값에 팔리고 있을 것이다.

필자가 그 광고를 처음 접한 것은, 지금은 고인이 된 천재시인 오규원 선생과 함께였다. 선생은 듣고 기발하다며 깔깔 웃었다. 그러나 필자는 웃을 수가 없었다. '솔직히 말해서'가 거기 들어갈 수 있는 문장인가 하는 점만이 필자는 궁금했다. 솔직히 말해서, 좀 어리둥절했다. 바로 그런 파격(破格)이 이 카피의 위트를 잦는다는 사실을 이해하는 데 한참이 걸릴 만큼 필자는 유머에 둔하다.

그런 필자는, 철학자 싸르트르에 의하면 '엄숙한 정신'의 소유자일 공산이 크다. 그런 사람의 뇌은 이념이나 사상 따위로 꽉 차 있어서 유머가 활동할 여유 공간이 부족하다.

그런 탓에 필자가 쓰면 이따금씩 오해가 생기곤 한다. 지난번 쓴 글을 읽고 전화를 걸어 항의한 독자가 있었다. 기지 건설을 반대한다고 사람들을 친일분자로 몰 수가 있느냐는 항의였다. 침대가 가구 아니고 뭐냐는 항의다. 경우가 비슷한 항의가 종종 있다.

'오해는 없다. 소통의 실패가 있을 뿐'이라는 아프리가 격언이 있다. 그러므로 독자만 탓할 수 없다. 오해가 생겼다면 필자의 탓이 절반 그 이상이다. 그렇다고 해서 반어(反語), 역설, 풍자(諷刺), 익살 등 인류가 수천 년을 써 온 말하기와 글쓰기의 기교를 선뜻 폐기해 버릴 수도 없는 노릇이다. 평생 써 온 사람에게도 글쓰기란 여전히 어렵다.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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