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상일의 세상읽기]일본, 일어설까
입력 : 2011. 07. 22(금) 00:00
일방적으로 자국만 챙기는 오바마의 교역관(交易觀)에 대해 썼더니, 누가 말했다. 오바마가 당신 글을 읽을 가능성은 0.01%도 안 된다고. 그래서 대답해 줬다. 그렇다면 시저나 나폴레옹에 대해서도 이야기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우리가 하는 이야기를 그들이 들을 가능성은 그 0.01%마저도 없으므로.

우리가 과거를 이야기하는 것은 현재를 일깨우기 위해서다. 이웃나라 이야기를 하는 이유도 같다.

쓰나미가 쓸고 간 일본을 바라보며 세계는 두 가지에 놀랐다. 일본정부의 무능(無能)과 일본국민의 침착(沈着). 그래서 일본국민들 사이에서는 대통령제를 하자는 여론도 도는 모양이다. 정부의 무능이 내각제 탓이라고 여기는 것이다. 그러나 국민은 유능한데 정부만 무능하다는 것은 이상하다. 뭔가 아귀가 맞지 않아 보인다.

대재앙 앞에서 '으젓한' 일본국민에게 세계가 감탄을 금치 못할 무렵, TV를 보던 아내가 한마디 했다. "뭔가 이상해요. 표정도 없고. 뭐랄까, 인형들 같아요." 듣고 보니 좀 그래 보였다. 놀라고 슬퍼하고 분노해야 할 상황에서 그들은 침착했다. 무표정했다. 거기에 질서는 있었으나, '사람 냄새'는 없었다. 요즘 상황은, 그 때 희미하게 느꼈던 회의(懷疑)가 시간이 갈수록 점점 짙어가는 형국이다.

막부(幕府)시대에는 '쇼군'에게, 그 다음은 '천황'에게, 그 다음은 점령군의 나라인 미국에게 극도로 고분고분하며 살아온 국민이다. 그들의 소문난 질서와 예절 바름은 그런 굴종(屈從)에서 빚어진 특유의 표정과 제스처일 수가 있다.

일본 국민의 정직성에 대해 많이들 이야기한다. 그러나 꼭 그렇지도 않다. 앨빈 토플러의 지적처럼, 일본 정치가 검은돈으로 굴러간다는 사실은 일본 국민도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그런데도 그들은 수십 년간 묵인했다. 그 동안 일본경제가 좋았기 때문이다. 그런 그들을 정직하다고 할 수 있을까.

사고 난 후쿠시마 원전에 대해서도 계속 거짓말만 하고, 어제는, 세슘에 오염(汚染)된 쇠고기를 학생들에게 먹였다는 뉴스가 있었다. 대재앙 직후 필자는 일본이 곧 다시 일어선다고 썼다. 그 말에 대한 자신이 슬슬 없어지는 중이다. <문학평론가>
기사에 대한 독자 의견 (1 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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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메마씸 07-22 11:26삭제
일본인의 이중성은 전세계가 익히 잘 알고 있는 습성이다. 즉, 일본인들은 혼네(속마음) 타테마에(겉으로 드러나는 마음)이 완전히 다르다는 것이 통설이다.

하지만, 그들은 개인적으로는 결코 남에게 해를 주거나 몰염치 같은 짓은 꺼려한다. 지극히 개인주의적이라는 것이다. 한편, 가미가제 특공대에서 보여줬던 치열한 애국심(혹자는 세뇌 또는 강요에 의한 것이라 함)과 그에 수반되는 잔인함은 인류 역사상 그 유례를 찾기가 쉽지 않다.

50여만의 목숨을 앗아간 난징대학살, 만주국에서의 생체실험, 남양주군도의 학살만행 등은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그들의 야만성이다.

심지어, 몽고군/중국군/프랑스군/미국군을 다 무찌른 베트남 조차도, 일본이라면 생체적으로 몸서리친다. 아마, 2백만 가까운 베트남인들을 굶겨서 죽였기 때문이다.

지금은 세계 최대의 쌀수출국이이며 일년 3모작이 가능한 베트남에서 아사자가 생겼다는 것은 엄청난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지만, 일본은 모든 식량을 공출해가면서 그들을 아사시켰던 것이다. 이러니, 베트남인들의 몸속에 일본인에 대한 두려움은 본능적으로 작동이 된다한다. 이러한 현상은 내가 다녀본 동남아 대부분의 국가 사람들(심지어는 대만이 더 심학고, 본토 중국인들도 그러함)에게도 보편적으로 나타난다.

한가지 더한 아이러니는 상대적으로 가장 인명 희생이 적었던 조선(한국)은 일본 알기를 아주 우습게 생각한다. 젊은 사람들일 수록 더한 편이다. 물론, 현재 조선/반도체/휴대폰/정유산업 등에서 우리나라가 앞서 나가고 대중예술의 한류열풍으로 우리들이 일본에 대해 과거와 같은 열등감을 지속할 이유는 찾기가 점점 쉽지가 않다.

근데, 문제의 본질은 따로 있다.

우리나라가 중국에 대해서는 년간 무역수지가 약500억달러의 흑자라면, 대일 무역적자는 약 300억 잘러에 달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이것이 시사하는 바는 무엇인가 ?
우리가 아무리 한류의 우수성을 외쳐봐야 그러한 것들이 일본으로 얻어오는 달러는 고작 수천만불에 지나지 않고, 반면에 자동차/조선/철강/전자 등 대부분 산업에서 기초소재 및 가공설비 등은 여전히 대일 의존도가 높다는 것을 반증한다.

일본의 저력을 알려면 딱 두가지만 실천하면 입을 다물지 못한다. 즉, 2차대전 당시 미군 여류인류학자가 쓴 '국화와 장검'을 보는 것이며, 야스꾸니 신사 내에 있는 전쟁박물관을 직접 가 보는 것이다. 말이 필요 없다.

일본의 속살을 제대로 경험해보지 못한 사람들이 그냥 뜬구름 잡듯한 일본에 대한 평가와 감정을 설익은 사람들에게 그대로 옮아 갔을 때 발생할 무지한 해악은 차마 상상하기도 벅차다.

이제, 다시 본인의 제목의 본론으로 돌아가서....

제주는 어떻게 일어설 수 있을까 ?

퉁명한 말씨와 행동, 무개념적인 몽니, 국가관 부족 등등 앞이 잘 보이지 않는다. 아뭏든, 지역내 지식인들의 사명은 제주민을 보다 건전한 사고를 유지하고 국제감각을 익히도록 계몽 및 장려하는 것이지, 괜한 이념적 몽상을 주지시켜서 갈팡질팡하게 만드는 것이 아니다.

이쯤하고, 나는 다시 일을 해야겠다. 달러는 벌어야, 개념은 없지만 그래도 같은 백성 그 누군가 미쿡산 소고기가 들어있는 함바그나 Coke를 사 먹을 수 있을테니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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