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상일의 세상읽기]'19금'의 당착
입력 : 2011. 07. 13(수) 00:00
제주은행 로고는 원래 빨간 색이었다. 군사정부 시절, 그것이 파랑으로 바뀐 적이 있었다. 그 뒤 세월이 좋아져 로고는 다시 빨간 색이 됐다. 지금은 신한지주 로고를 나눠 쓰고 있다.

얼마나 고운 색깔인가. 그것을 북한이 애호한다는 이유만으로 꺼린다면, 그 좋은 것을 북한은 챙기고 우리는 잃게 되는 것이다. 우리만 손해다. '동무'나 '인민'처럼 아름답고 의미값이 큰 어휘(語彙)들도 우리는 그렇게 잃어 버렸다. 실은 줘 버린 것이다. 거저.

군사정부 시절에는 별의별 황당(荒唐)사건이 많았다. '동백 아가씨' '아침 이슬' '불 꺼진 창' 등 수많은 곡이 불분명한 이유로 금지당했다. '세시봉' 이장희씨의 '한 잔의 추억'도 금지곡이 됐는데, 이 경우는 이유가 분명했다. 술을 권한다는 것이 이유였다.

지금 와서 돌아보면 그 시절의 이런저런 것이 퍽 괴이스러워 보인다. 몇 해가 지나고 나면 지금 이 시대의 이런저런 것이 그렇게 괴이스러질 것이다.

'감성 밴드 여우비'의 노래를 여성가족부가 '19금(禁)'으로 판정한 것도 그런 황당한 경우다. '19금'이 되면 청소년들이 노래를 다운받아 들을 수 없게 된다. 이번도 이유는 '술'이다. "추억은 가슴에 묻고서 가끔 술 한 잔에 그대 모습 비춰 볼게요"라는 노랫말이 청소년에게 유해하다는 것이 판정 이유다.

필자에게는 그저 아름답기만 한 노랫말을 질색하는 심사위원은 어떤 사람일까. 정신과 의사에게 물으면 우선적으로 검열자의 가족 중에 알콜중독자가 있는가부터 알아보려고 할 것이다. 검열(檢閱)은 왕왕 피검열자보다는 검열자 자신의 정신상태를 보여주기 때문이다.

쓰다가 보니 생각이 났다. "술 익는 마을마다 타는 저녁놀"을 노래한 박목월 선생의 '나그네'는 전국민의 애송시(愛誦詩)다. 대한민국 정부가 중학교 국어교과서에 실어 널리 읽혔기 때문이다.

'나그네'가 지금도 교과서에 실려 있는지 필자는 알지 못한다. 실려 있다면, 교육과학기술부가 여성가족부보다는 정신이 한결 맑은 것이다.

<송상일 문학평론가>
기사에 대한 독자 의견 (1 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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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메마씸 07-13 15:47삭제
일부 우리나라 사람들은 다음과 같은 몇가지 불가사의한 의식구조를 가지고 있다.

1. 조선이 망했던 배경에 까막눈이다.

2. 독립국가 국부인 이승만을 저주한다.

3. 6.25동란 발생원인도 미제국주의자들의 소행이라고 덮어 씌운다.

4. 박정희의 근대화/산업화 업적을 깔아 뭉갠다. 그러면서, 그 과실은 염치 없게도 그냥 잘도 향유한다.

아시아 모든 국가가 탈식민지 이후에 군부 독재과정을 겪지 않고 예쁘게 민주화로 성장한 사례는 거의 없을 것이다. 이것은 부족한 사회적 자산, 낮은 교육수준 및 민도 등으로 인한 사회적 혼란상태를 안정된 사회적 질서로 유지시키기 위해선 독재란 수단이 필요악임을 반증하는 것이다. 즉, 세계적으로 절로 산업화가 되고 민주화가 된 역사적 사례가 있으면 누가 한번 대봤으면, 나도 공부 좀 더 해보겠다. 그것은 한낱 개념 없는 망상주의자들의 꿈일 뿐이다. 현실은 당시의 시대적 상황의 요구가 반영되는 것이다.

5. 천암함사건도 남한의 조작극이라는 북한측 주장을 그대로 따라 한다.

6. 안보는 나몰라라하고, 무책임하게 평화만 줏대 없이 외쳐댄다.

7. 치열했던 과거를 그냥 다 부정적으로만 바라본다. 하지만, 뇌물 관련 조사를 받던 전직대통령의 자살은 서거라고 미화한다.

검열자의 정신상태를 탓하기 전에, 그것을 탓하는 자의 상태는 어떤가 묻고 싶어진다.

오늘도 핑계거리('핑곗거리"가 맞는 글인가 ?)가 생겼으니, 술이나 한잔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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