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상일의 세상읽기]사소한 이야기
입력 : 2011. 07. 08(금) 00:00
문화일보 사장을 지낸 남시욱 선생. 그러나 선생은 역시 '동아맨'이다. 동아일보에서 잔뼈가 굵어 편집국장과 주필, 상무까지 지냈다.

동아 재직 시절의 선생을 만난 적이 있다. 제주남서울호텔(지금의 더 호텔)에서 열린 무슨 세미나에서였다. 선생이 편집국장을 그만 둔 직후였는데, 사석(私席)을 빌려서 필자에게 이런 말을 했다. "이제 신문도 읽게 됩니다."

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 신문을-심지어 자기 신문도-잘 읽지 않는 편집국장도 뜻밖에 꽤 있다. 안 읽는 것이 아니라 못 읽는 것이다. 워낙 바쁜 자리다. 편집 외 업무에 쫓겨 신문은 큰 제목만 대강대강 읽고 지나기 일쑤다. 마치 큰 절 살림을 꾸리느라 좌선(坐禪)하는 것은 잊어 버린 주지 스님 격이다(비유가 스님께 누가 된다면 철회하겠다. 그러나 그런 일은 없을 것이다. 불가에서는 퍽 익숙한 비유이기 때문이다).

국장을 그만 두고 글을 쓰게 되니까 신문의 구석구석 사소한 기사까지 샅샅이 보게 된다고 선생은 말했다. 선생에 따르면, 칼럼 소재는 큰 기사보다는 작고 아기자기한 기사에 묻혀 있는 수가 많기 때문이다.

그 이유는 설명이 없어도 이해할 수 있다. 예컨대 찰스 램의 독자라면 사소한 것을 진지(眞摯)하고 정교(精巧)하게 다루는 경우에 익숙할 것이다. 에세이 쓰기란-전부는 아니라도, 중요한 스타일의 하나는-이럴 것이다. 사소한 것을 사소하지 않게 다루는 글쓰기.

올렛길을 걷다가 문득 멈춰섰다. 일찍 나온 나비가 요란한 날갯짓으로 나그네를 유혹한다. 올 봄에 보는 첫 나비다. 멈춰 서서 한참을 바라보는데, 워킹 패션으로 완전무장한 처녀가 물어 왔다. "뭘 보세요?" "나비가 나왔네요." 처녀는 나비 한 번, 필자 한 번 흘겨보고는 가던 길을 바삐 걸어 나갔다. 별것도 아닌 것에 귀한 시간을 허송할 수 없다는 비장(悲壯)한 표정으로.

'쉬멍, 놀멍, 걸으멍' 가라는 길을 그녀는 그렇게 앞질러 씩씩하게 사라져 갔다. 글쓰기도, 읽기도, 일생도, 올렛길도, 그 뿐인가, 국가정책도 사소한 것을 놓침으로써 참으로 중요한 것들을 놓치게 되는 수가 종종 있다. <송상일 문학평론가>
기사에 대한 독자 의견 (1 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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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메마씸 07-11 17:08삭제
국어 공부를 버린지 수십년이 되어 실상 맞춤법에 자신은 없는데, 가끔 만용을 부리는 내자신이 우스꽝스럽긴 하지만 뭐 어쩌랴 ~ !!

글 무덤 사이로, '올렛길'과 '날갯짓'이 보이는데, 참으로 평범해 보이지 않는 단어들이다. 아마 '올레의 길', '날개의 짓'을 의미하는 것 같은데 말이다.

이러한 용법이 바른 것인지도 잘 모르겠고, 아마 일본어의 'の'와 같이 곁다리로 꼭 써야하는 것인지도 모르겠으나, 웬지 일상 생활에서 발음해대기는 그닥 편해보이진 않다. 국어학자들의 융통성이 좀 필요한 대목은 아닐까 ?

한편, '올레길'에 대한 푸념 몇 토막 덧붙이고자 한다. 그간, 이 한라일보의 터에서 숱하게 해대긴 했지만서도...

'올레'란 각각 집집마다 큰길로 통하는 좁은 통로, 즉, 정낭으로 가로막는 그런 길로 알고 있는데, 이것이 어떻게 변질이 되어 여러 마을과 들과 산을 연결하는 개념으로 확대되어져 쓰이고 있는지 참으로 아리송하다.

아마, 어감이 좋아서 차용해온 것 같긴 하지만, 제주어에서 마을과 마을을 소통하는 길은 '질레'라고 하는 것이 더 타당한 것이 아닐까 ? 제발, 누가 속시원히 답 좀 해주면 좋겠다. 제주도에서는 제주어교사도 전문적으로 양성한다고 하는데 말이다.

이제는 전국적으로 알려진 명칭이어서 쉽게 변경하기도 적절치 않은지 모르지만, 그렇다고 틀린 말을 그대로 쓰는 것도 후손에게 부끄러운 일은 아닐까 ? 진나라 환관조고의 '지록위마' 같은 우를 범하지 않기 위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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