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상일의 세상읽기]추사와 산방산
입력 : 2011. 06. 29(수)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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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예가요 전각가(篆刻家)인 고(故) 김광추 선생께 필자가 들은 이야기다.
조선 후기의 명필 창암(蒼巖) 이삼만이 있다. 그가 한 번은 대얏물 위에 붓글씨를 썼는데, 먹물이 글씨 모양 그대로 고스란히 바닥에 가라앉았다. 추사(秋史)가 그 광경을 보고 돌아가 자신도 시도해 보았으나 되지 않았다. 물론 전설이다.
전설도 자라난다. 창암이 쓴 글씨를 후우 불었더니, '鳥'자는 새가 돼 날아가고, '雲' 자는 구름이 돼 날아갔다는 이야기도 전해 온다.
있을 수 없는 이야기가 그럴 듯하다. 이제부터는 그럴 듯할 뿐 아니라 있을 수도 있는 이야기다.
창암과 추사의 대결 설화는 우연치 않아 보인다. 추사는 이광사(李匡師)가 조선의 서예를 다 망쳤다며 자신의 글씨체를 개척해 나갔다. 이광사는 창암의 스승이다.
추사는 금석학(金石學)의 대가였다. 그 유명한 추사체도 비석 글씨 연구에서 얻어졌다는 것이 통설이다. 그러나 비학(碑學)의 영향이 전부였을까.
창암은 전북 사람이다. 유연히 흐르는 그의 글씨체는 필자의 인상 속에서 섬진강의 정경을 닮아 있다. 자연물에서 비유를 찾자면, 추사체는 그 무게감이 마치 큰 바위산이다. 그런 추사체가 제주 유배(流配) 시절 완성을 본 것도 흥미로운 사실이다.
'노루' 등 제주의 향토색 짙은 소설을 여럿 남긴 작가 고(故) 최현식 선생은 추사체가 산방산과 단산을 닮았다고 했다. 닮았을 뿐 아니라, 그 두 개의 산-최 선생이 꼽기로는 특히 단산-이 분명 추사체 형성에 영향을 끼쳤을 거라고 최 선생은 짐작했다.
짐작이다. 그러나 짐작일 뿐이라며 내버리기는 아까운 '이론'이다. '추사의 흔적 따라 걷는 길'의 프로그램에 넣어 '이런 이야기도 있다'는 정도로나마 소개해 봄직한 소재다.
그러면 듣는 사람들은 산방산에서 추사체를 감상하고, 추사체에서는 산방산-혹은 단산-의 산세(山勢)를 찾아보려고 시도할 것이다. 엉뚱 기발한 발상도 아니다. 필자는 지금 자연과 예술을 향유(享有)하는 오래된 방법의 하나를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다.
<문학평론가>
조선 후기의 명필 창암(蒼巖) 이삼만이 있다. 그가 한 번은 대얏물 위에 붓글씨를 썼는데, 먹물이 글씨 모양 그대로 고스란히 바닥에 가라앉았다. 추사(秋史)가 그 광경을 보고 돌아가 자신도 시도해 보았으나 되지 않았다. 물론 전설이다.
있을 수 없는 이야기가 그럴 듯하다. 이제부터는 그럴 듯할 뿐 아니라 있을 수도 있는 이야기다.
창암과 추사의 대결 설화는 우연치 않아 보인다. 추사는 이광사(李匡師)가 조선의 서예를 다 망쳤다며 자신의 글씨체를 개척해 나갔다. 이광사는 창암의 스승이다.
추사는 금석학(金石學)의 대가였다. 그 유명한 추사체도 비석 글씨 연구에서 얻어졌다는 것이 통설이다. 그러나 비학(碑學)의 영향이 전부였을까.
창암은 전북 사람이다. 유연히 흐르는 그의 글씨체는 필자의 인상 속에서 섬진강의 정경을 닮아 있다. 자연물에서 비유를 찾자면, 추사체는 그 무게감이 마치 큰 바위산이다. 그런 추사체가 제주 유배(流配) 시절 완성을 본 것도 흥미로운 사실이다.
'노루' 등 제주의 향토색 짙은 소설을 여럿 남긴 작가 고(故) 최현식 선생은 추사체가 산방산과 단산을 닮았다고 했다. 닮았을 뿐 아니라, 그 두 개의 산-최 선생이 꼽기로는 특히 단산-이 분명 추사체 형성에 영향을 끼쳤을 거라고 최 선생은 짐작했다.
짐작이다. 그러나 짐작일 뿐이라며 내버리기는 아까운 '이론'이다. '추사의 흔적 따라 걷는 길'의 프로그램에 넣어 '이런 이야기도 있다'는 정도로나마 소개해 봄직한 소재다.
그러면 듣는 사람들은 산방산에서 추사체를 감상하고, 추사체에서는 산방산-혹은 단산-의 산세(山勢)를 찾아보려고 시도할 것이다. 엉뚱 기발한 발상도 아니다. 필자는 지금 자연과 예술을 향유(享有)하는 오래된 방법의 하나를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다.
<문학평론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