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상일의 세상읽기]가지 않은 길
입력 : 2011. 06. 24(금) 00:00
지난 주, 글 쓰는 벗들이 본 지가 꽤 됐다며 만나서 밥이나 먹자고 해 시간에 맞춰 나갔다. 그런데 착오(錯誤)가 있었다. 약속 시간이 12시인 줄 알고 갔는데, 예약이 12시 반으로 돼 있었다. 30분이면 필자의 올렛길 걸음으로 2km 거리다. 걷기로 했다.

입고 간 점퍼를 벗어 허리에 동여매고 걷는데, 곧 숲길이 나왔다. 고즈넉한 숲길이었다. 숲길을 걸으면 들꽃, 풀잎, 숲 사이로 부는 바람, 발에 채는 돌부리까지도 다정하게 이야기를 걸어온다. 걷는데, 문득 그 중의 누군가가 속삭였다. 너는 지금 '가지 않은 길'을 걷고 있는 거야.

'가지 않은 길'은 미국 시인 로버트 프로스트의 시다. 이렇게 시작하는 시다.

"노란 숲 속에 길이 두 갈래로 났다./나는 양쪽 길을 다 가지 못하는 것을 안타까워하며,/오랫동안 서서 한 길이 굽어 꺾여 내려간 데까지,/바라다볼 수 있는 데까지 멀리 바라다보았다."

한밤중 소동(騷動)을 부려 붙잡혀 온 10대들에게 각자 '가지 않은 길'을 백 번씩 써 내라고 판결한 판사가 있었다. 물론 미국 이야기다. 프로스트는 미국 국민이 가장 좋아하는 시인이다. 모르긴 몰라도, 미국 국민의 절반이 이 시를 욀 수 있을 것이다.

하고 많은 시들 중에 왜 하필 이 시일까가 문득 궁금해졌다. 그러자 이 사람 생각이 났다.

셔츠 바람에 멜빵을 하고 지난 25년 간 CNN 토크쇼를 진행하다 올해 은퇴한 래리 킹은, 그가 인터뷰한 다양한 분야의 위인들은 한 가지 공통점이 있었다고 했다. 이 인터뷰의 달인(達人)에 따르면, 그들은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고 자기 길을 갔던 사람들이었다.

미국의 역사는 상당한 분량이 남들이 '가지 않은 길'을 갔던 사람들의 열전(列傳)이다. 그것이 오늘까지의 미국을 만들었다. 그러나 '오늘까지'만이다.

그들은 여전히 프로스트의 시를 애송(愛誦)한다. 그러나 이제 그들은 '가지 않은 길'을 가 보려는 호기심과 용기를 거의 잃어 버린 모습이다. 오바마가 꼽은 미국의 침체 원인도 이것이다. <문학평론가>
기사에 대한 독자 의견 (2 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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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메마씸 06-25 07:03삭제
누가 뭘 강요했다고 하며, 파시즘이 운운되는지 조금 의아스럽네요.

이왕 사회상에 대한 관심을 둘려면, 머나먼 타국의 일에 감놔라 배놔라 하기 보다는 당장 우리가 살고 있는 현재 제주사회에서 가장 이슈가 되고 있는(아니, 귀하께서 재직하고 있는 한라일보에서 가장 많은 기사를 올리는..) 해군기지문제에 대해 현명한 철학(?)적 사유 한토막을 기대하고 싶었던 것입니다.

한편, 저도 사전에 찾아봤더니, 국어학적으로는 님의 해석이 맞네요. 저야 소설책에서도 관용적으로 쓰이는 "밭끝에 채이다'를 들먹였고....

마치, 우리 일반인들이 '족발', '낙수물' 등과 같이 이중어를 써온 관행 때문이라고 변명하리다.
게메마씸 06-24 15:41삭제
지금 한국에서도 변방 섬인 제주에서 해군기지문제로 난리굿인데...

제주는 아에 '가지 않은 길'을 가볼려는 시도는 고사하고, 가야할 길도 딴지 걸면서 주저 앉힐려고 쌩난리치는데...

님은 그런 현상에 대해 어떤 생각이 드시는지오 ?

나야 헐랭이라서 맞춤법이 신통치 않지만, 언론인 정도면 맞춤법과 꾸밈새 정도야 반듯하게 써야 하는 것은 기본이 아닐런지오 ?

윗글 중에서 발췌하여, 내 나름대로 교정 좀 볼테니, 참고하시길...

"발에 채는 돌부리까지도" => "발(끝)에 채(이)는 돌부리까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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