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상일의 세상읽기]범죄의 역사
입력 : 2011. 05. 20(금) 00:00
근대 초기 일본 젊은이들은 '데칸쇼'에 취해 살았다. 데카르트, 칸트, 쇼펜하우어 3인을 그들은 그렇게 불렀다. 그 시절의 이야기다.

당시 그들 사이에는 '저공비행(低空飛行)'이라는 게임이 유행했다. 시험에서 40점이 낙제점인 경우, 정확히 40점을 받는 시합이다. 1점만 모자라도 낙제를 하게 되므로, 진짜 수재들만이 즐길 수 있는 일종의 '치킨 게임'인 것이다. 그 시절 대학생들은 학점을 갖고 유희(遊戱)를 할 만큼 여유와 낭만을 누렸다.

참고로, '치킨 게임'은 낭떠러지를 향해 자동차를 모는 시합이다. 누가 더 낭떠러지 가까이 가서 멈춰 서느냐로 승부(勝負)가 정해진다. 먼저 차에서 뛰어내리거나 핸들을 꺾는 사람은 겁쟁이 치킨(병아리)이라고 놀림을 당하게 된다.

이처럼, 사람들은 주목을 받기 위해 여러가지 시도를 한다. 경기 중인 축구장에 알몸으로 뛰어든다거나, 맨손으로 빌딩벽을 기어 오르기도 한다. TV 카메라 앞에서 남의 종교 경전을 불지르는 사람도 있다. 코란을 소각(燒却)한 존스 씨는 신도 수가 50명밖에 안 되는 교회의 목사다. 예수의 복음을 전하는 데는 무능하지만, 세계적인 주목받는 손쉬운 방법을 그는 알고 있었다.

가장 역설적인 것은 '조디악 킬러'의 경우다. 1960년대 미국에서 일어난 연쇄살인의 범인은 조디악 무늬를 그려 넣은 편지를 경찰에 보내 범행을 예고하곤 했다. 두뇌 게임의 초대장이었다. 범인은 끝내 잡히지 않았다. 필자가 '조디악 킬러'를 역설적이라고 하는 이유는, 범인이 사람들로부터 주목을 받기 위해 자신의 신원을 숨겨야 하기 때문이다.

콜린 윌슨의 '범죄의 역사'을 읽다 보면 받게 되는 인상이 있다. 감정의 폭발을 수반하는 원시 범죄에서 '근대적' 두뇌 범죄로, 돈만 노리는 수전노(守錢奴)적 범죄로, 그 질이 점점 저하되는 인상이 그것이다.

해킹의 역사는 이 모든 과정을 압축해 보여준다. 처음에 해킹은 해커가 기술을 시험해 보고 과시(誇示)도 하는 일종의 명예 범죄였다. 그러나 이제 그런 따위는 안중에 없다. 뉴스에 의하면, 기업 해킹이 극성인데, 목적은 하나같이 '돈'이라고 한다.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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