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상일의 세상읽기]큰스님의 말씀
입력 : 2011. 05. 11(수) 00:00
해인사에는 성철 스님의 사리탑이 있다. 벚꽃이 피는 4월 어느날 때늦게 흩뿌리는 눈발을 맞으며 필자는 스님의 사리탑 앞에 한참을 서 있었다.

스님의 말씀을 기억한다. 부처님 오신 날에 즈음한 종정(宗正) 법어였다. "교도소에서 살아가는 거룩한 부처님들, 술집에서 웃음 파는 엄숙한 부처님들. 오늘은 당신네들이 생신이니 축하합니다"라고 했다.

교회에서 찬송하는 경건한 부처님(기독교 신자), 법당에서 염불하는 청수(淸秀)한 부처님(불교 신자), 들판에서 흙 파는 부처님(농민), 자욱한 먼지 속을 오가는 부처님(공장 노동자, 도시민, 청소부 등등), 학교에서 공부하는 부처님(교사, 학생)들에게도 스님은 축하를 전했다.

스님의 인사는 유마힐(維摩詰)을 생각나게 한다. '유마경'에는 주인공 유마힐이 이렇게 소개 돼 있다. "먹고 마시지만 선(禪)의 기쁨을 맛보기를 더 좋아하고, 노름판에 가도 그 곳의 사람들을 바로 이끌고, 술집에 들르면 정신을 차려 뜻을 세우도록 했다."

유마힐은 술집과 노름판을 드나드는 것도 꺼리지 않았던 모양이다. 그 자신이 술도 마시고 노름도 했을 것이다. 그렇지 않고서 어떻게 그곳 사람들과 진심을 통했을 것인가.

예수도 바리새인들로부터 먹보요 술꾼이라는 비난을 들었다. 우연치가 않다. 불교는 일체 중생이 불성(佛性)을 지닌다고 가르친다. 그리고 기독교의 성서에 의하면, 사람은 하느(나)님의 모습으로 창조 됐다. 범죄자와 몸 파는 여자도 이 진리로부터 제외될 수 없다. 제외시키는 자가 있다면 그는 외도(外道)요 이단(異端)이다.

이 진리의 궁극적인 표현이 화신(化身) 사상이다. 이 사상에 의하면 석가는 사람의 몸으로 오신 부처님이시다. 예수는 사람의 몸이 되신 하느(나)님이시다. 그리고 불교와 기독교에서 공(共)히 그것은 지극히 존귀한 존재가 낮은 데로 임한 사건을 의미한다.

그래서 이 사건은 하나의 명령을 함축한다. 자신의 불성과 신성을 되찾고자 하는 자는 스스로 낮은 데로 임해야 한다는 명령.

불기 2555년 부처님 오신 날에 썼다.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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