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상일의 세상읽기]가꾸는 것은 지키는 것
입력 : 2011. 05. 04(수) 00:00
종종 이런 질문을 듣는다. 이미 만들어져 사람들이 이용하고 있는 길에 리본을 매달아 길 표시한 것이 뭐가 그리 대단한 사업 아이디어냐고. 그러면 필자는 말한다. 그것은 콜롬버스의 달걀과 같은 이야기라고. 어쨌든 그 전까지는 그런 사업을 착안(着眼)한 사람이 없었다.

올렛길 18코스가 개통됐다. 필자도 기다렸던 코스다. 그러나 설레는 마음 한 켠에는 불안감이 은밀히 굽이친다. 트라우마 때문이다. 트라우마란, 정신적인 충격을 받은 사람이 그로 인하여 스트레스가 지속(持續)되는 마음의 병을 일컫는다. '생이기정 길' 위에서 벌어진 일을 생각하면 필자는 아직도 가슴이 벌렁인다.

올렛길 12코스에 '생이기정 길'이 있다. 새를 뜻하는 제주방언 '생이'와 절벽을 뜻하는 '기정'을 합성해 만든 이름이라고 하는데, 해안 절벽을 따라 길게 뻗은 소롯길이 절경이다. 필자는 유언(遺言)처럼 말하곤 한다. "내가 생을 마감하는 때가 오면 '생이기정 길'에 누워 차귀도의 석양(夕陽)을 바라보며 숨을 거두고 싶다"고. 필자의 부족한 글솜씨로는 그곳의 황홀한 정경을 이렇게밖에는 달리 전달할 수가 없다.

그 '생이기정 길'에, 지난해 제주특별자치도는 2억 수천 만원을 들여 널돌을 깔았다. 자연이 낸 흙길을 인공 포장길로 바꾼 것이다.

'친환경적으로 가꾼다'며 벌인 일이었다. 그러나 그러는 것은 가꾸는 것이 아니다. 그 뜻을 음미해 보면, 가꾸는 것은 지키는 것이다. '꽃을 가꾸다'는 말을 생각해 보면 그 점이 잘 드러난다. 예컨대 찔레꽃을 가꾸는 것은 그것을 장미로 둔갑시키는 것이 아니라 찔레꽃 본연(本然)의 자태로 자라도록 돕는 것이다.

가꾼다는 것은 그것의 본질을 실현하도록 돕는다는 의미다. 그러므로 가꾸는 것은 돌보는 것이다. 그리고 돌보는 것은 존중하는 것이다. 존경심이 없을 때 돌봄은 파괴적이 된다. '생이기정 길'이 그 증거다.

그리 된 것을 뒤늦게 안 서명숙 (사)제주올레 이사장이 "통곡하고 싶다"며 개탄했다는 보도를 본 적이 있다. 차제에, (사)제주올레가 올렛길을 가꾸는 사업과 함께 지키는 운동도 펼쳐 주기를 희망해 본다. <편집고문>
기사에 대한 독자 의견 (1 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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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보박 05-09 15:54삭제
올레길 초심이 바레는 듯 하여 저도 염려스런 부분입니다.
조만간 칼힐을 신고 올레를 걷는 여성분들도 계실지...

그러나 응원은 하고...건강하세요.
애월 책방지기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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