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상일의 세상읽기]고향과의 싱싱한 만남
입력 : 2011. 04. 29(금)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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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 못하는 아기의 신상에 이상이 생기면 엄마가 가장 먼저 알아챈다. 그래서 철학자 자크 마리탱은, 엄마는 천부적인 소아과 의사라고 했다. 엄마의 그런 인식 능력은 어디서 오는가. 사랑이다.
지금쯤 출간이 됐을까. 필자는 교정쇄(校正刷)로 읽었다. 향토사학자 김찬흡 선생이 엮은 '제주 애월읍 명감(名鑑)'을 들여다보며 새삼 깨달은 사실이 이것이다. 사랑하는 것이 아는 것에 앞선다.
예컨대 저자는, 4·3사건 때 소실된 구엄교 졸업생의 학적(學籍)를 증언자의 구술을 받아 되살리고, 일본식 이름은 본래의 이름을 찾아주고, 졸업 이후 경력까지 일일이 복원해 냈다. 그렇게 찾아내 수록한 인물이 3 300명이다. 저자에게 뜨거운 애향심이 없었다면 어떻게 이런 연구가 이루어질 수 있었을 것인가.
물론, 기쁨은 없이 고역(苦役)이기만 하다면 이런 책이 만들어질 수 없을 것이다. 새로운 사실을 찾아낸 순간 역사가가 느꼈을 기쁨을 상상해 본다. 그것은 몇날 며칠 산야를 누비던 식물학자가 마침내 신종의 야생화를 발견했을 때의 기쁨과 같을 것이다.
알기 위해서는 사랑에 빠져야 한다. 이것이 향토사를 쓰기 위한 첫째 조건이다. 그러나 모르는 대상을 나는 사랑할 수 없다. 몰래 하는 짝사랑도, 하다못해 스쳐 지나며 훔쳐본 인상이라도 갖고 있어야 연정(戀情)에 불이 당겨질 수가 있다.
그 점에 관해 사사로운 소감 피력을 양해(諒解)하기 바란다. 필자는 본적지가 애월읍 금성리이다. 그 금성리에 제주도 최초의 유치원이 세워진 사실을 선생의 책을 보고 처음 알았다. 그것은 신기하다고 할지 신선하다고 할지 아무튼 특별한 경험이었다.
이처럼, 고향에 대한 새로운 지식은 고향에 대해 새로운 느낌을 갖게 한다. 그리고 그것을 느끼는 사람에게 고향은 더 이상 흘러간 옛 사랑의 그림자가 아니다. 고향을 새로 안다는 것은 고향에 새로 태어나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향토사는 고향과의 싱싱한 만남을 주선해 준다. 그러므로 서두의 명제를 뒤집어, 이렇게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아는 것이 사랑하는 것에 앞선다.
<문학평론가>
지금쯤 출간이 됐을까. 필자는 교정쇄(校正刷)로 읽었다. 향토사학자 김찬흡 선생이 엮은 '제주 애월읍 명감(名鑑)'을 들여다보며 새삼 깨달은 사실이 이것이다. 사랑하는 것이 아는 것에 앞선다.
물론, 기쁨은 없이 고역(苦役)이기만 하다면 이런 책이 만들어질 수 없을 것이다. 새로운 사실을 찾아낸 순간 역사가가 느꼈을 기쁨을 상상해 본다. 그것은 몇날 며칠 산야를 누비던 식물학자가 마침내 신종의 야생화를 발견했을 때의 기쁨과 같을 것이다.
알기 위해서는 사랑에 빠져야 한다. 이것이 향토사를 쓰기 위한 첫째 조건이다. 그러나 모르는 대상을 나는 사랑할 수 없다. 몰래 하는 짝사랑도, 하다못해 스쳐 지나며 훔쳐본 인상이라도 갖고 있어야 연정(戀情)에 불이 당겨질 수가 있다.
그 점에 관해 사사로운 소감 피력을 양해(諒解)하기 바란다. 필자는 본적지가 애월읍 금성리이다. 그 금성리에 제주도 최초의 유치원이 세워진 사실을 선생의 책을 보고 처음 알았다. 그것은 신기하다고 할지 신선하다고 할지 아무튼 특별한 경험이었다.
이처럼, 고향에 대한 새로운 지식은 고향에 대해 새로운 느낌을 갖게 한다. 그리고 그것을 느끼는 사람에게 고향은 더 이상 흘러간 옛 사랑의 그림자가 아니다. 고향을 새로 안다는 것은 고향에 새로 태어나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향토사는 고향과의 싱싱한 만남을 주선해 준다. 그러므로 서두의 명제를 뒤집어, 이렇게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아는 것이 사랑하는 것에 앞선다.
<문학평론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