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상일의 세상읽기]'생각하는 갈대'의 갈증
입력 : 2011. 04. 22(금)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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ㅈ일보 기자가 이 책에 대해 물었을 때 소설가 이문열씨는 시큰둥했다. "책은 못 읽고 기사는 읽었다. 그 책을 좌파들이 좋아한다고." 정의 따위의 '불온한' 문제에 사람들이 관심을 쏟는 것이 불편했던 모양이다.
어쨌든 놀랍다. '정의란 무엇인가'가 100만부나 팔렸다. 하버드 법대 교수의 강의록이다. 대중소설도 아니고, 제대로 읽자면 뇌세포를 고생시켜야 하는 인문학서다. 이런 현상을 어떻게 이해할까.
첫번째 실마리는 이병창교수가 쓴 '영혼의 길을 모순에게 묻다'이다. 필자가 퍽 재미있게 읽은 책인데, 난해하기 짝이 없는 헤겔의 '정신현상학'을 유쾌 발랄한 입담으로 풀어냈다. 글투가 이런 식이다.
"생각해 보면, 1980년대는 진리와 이념의 시대였어요. 그때 저는 '서로 다른 이념을 가진 사람들이 애인이 될 수 있는가' 하는 문제를 가지고 괴로워하는 학생들을 많이 만났습니다. 그들은 마치 로미오와 줄리엣이 자기들 가문의 짐 때문에 고통스러워했듯이 이념 때문에 고통스러워했어요."
두번째 실마리는 최근에 읽은 신문기사다. "'사회를 논(論)하자'서 '이젠 즐기자'로 확 바뀐 대학동아리"라는 제목의 기사였다. 기사 내용은 소개가 필요치 않을 것이다. 제목이 다 이야기해 놓았다.
그들은 말한다. 이념이 밥 먹여 주냐고. 밥도 안 되는 이념일랑 내다 버리고, 즐기자고. 이것이 대세(大勢)다. 그러나 1980년대 로미오와 줄리엣들에게 이념이 짐만 됐던 것은 아니다. 고뇌할 대의(大義)가 있다는 사실에 그들은 한껏 자부심을 느꼈다. 시대적 고뇌와 긍지는 차라리 그들의 특권이었다.
목욕물을 버리며 대야 속 아기도 함께 버린다는 서양 속담이 있다. 우리는 이념의 고뇌와 함께 '생각의 특권'까지 내다버리고 있는 것은 아닐까.
그러나 '생각하는 갈대'이기를 그만 두지 않는 한-그런데 생각하는 것은 인간의 조건이므로 그만 둘 수가 없다-이념에 대한 갈증은 없어지지 않는다. 예컨대 '정의'를 묻는 따위의 짓을 그만 둘 수가 없다.
<문학평론가>
어쨌든 놀랍다. '정의란 무엇인가'가 100만부나 팔렸다. 하버드 법대 교수의 강의록이다. 대중소설도 아니고, 제대로 읽자면 뇌세포를 고생시켜야 하는 인문학서다. 이런 현상을 어떻게 이해할까.
"생각해 보면, 1980년대는 진리와 이념의 시대였어요. 그때 저는 '서로 다른 이념을 가진 사람들이 애인이 될 수 있는가' 하는 문제를 가지고 괴로워하는 학생들을 많이 만났습니다. 그들은 마치 로미오와 줄리엣이 자기들 가문의 짐 때문에 고통스러워했듯이 이념 때문에 고통스러워했어요."
두번째 실마리는 최근에 읽은 신문기사다. "'사회를 논(論)하자'서 '이젠 즐기자'로 확 바뀐 대학동아리"라는 제목의 기사였다. 기사 내용은 소개가 필요치 않을 것이다. 제목이 다 이야기해 놓았다.
그들은 말한다. 이념이 밥 먹여 주냐고. 밥도 안 되는 이념일랑 내다 버리고, 즐기자고. 이것이 대세(大勢)다. 그러나 1980년대 로미오와 줄리엣들에게 이념이 짐만 됐던 것은 아니다. 고뇌할 대의(大義)가 있다는 사실에 그들은 한껏 자부심을 느꼈다. 시대적 고뇌와 긍지는 차라리 그들의 특권이었다.
목욕물을 버리며 대야 속 아기도 함께 버린다는 서양 속담이 있다. 우리는 이념의 고뇌와 함께 '생각의 특권'까지 내다버리고 있는 것은 아닐까.
그러나 '생각하는 갈대'이기를 그만 두지 않는 한-그런데 생각하는 것은 인간의 조건이므로 그만 둘 수가 없다-이념에 대한 갈증은 없어지지 않는다. 예컨대 '정의'를 묻는 따위의 짓을 그만 둘 수가 없다.
<문학평론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