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상일의 세상읽기]리즈의 애교점
입력 : 2011. 04. 13(수)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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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즈 테일러 추모 특집을 진행하는 TV 아나운서가 말했다. 그녀는 얼굴의 점까지도 아름다웠다고.
고인이 된 서양화가 김택화씨가 생전에 필자에게 했던 이야기가 생각났다. 미켈란젤로의 벽화는 금이 가고 물감이 벗겨진 것까지도 숭고미(崇高美)를 자아낸다고 했다. 이들은 향유(享有)하는 사람들이다.
위대한 교부(敎父) 아우구스티누스에 의하면, 세상에는 두 가지의 사물이 있다. 사용하기 위한 것과 향유하는 것. 사용하기 위한 것은 존재하는 목적이 따로 있다. 예컨대 망치는 못을 박기 위해 존재한다.
그러나 향유의 대상은 그 자체가 목적이 된다. 내가 그녀를 사랑하는 것은 사용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어째서 그녀인가? 여자이기 때문에? 세상에 여자는 많다. 예뻐서? 예쁜 여자는 TV 속에 더 많다. 그 대답은 하나밖에 없다. "그녀니까."
연애는 목적이나 의도나 근거나 핑계를 모른다. 내가 그녀를 사랑하는 이유는 그녀가 그녀이기 때문이다. 그 뿐이다. 만일 그녀의 집안, 재산, 직업 따위를 보고 사귄다면 나는 그녀를 사랑으로 대하는 것이 아니라 쓸모 있는 사물, 즉 망치와 같은 도구로 대하는 것이다.
향유는 눈이 머는 것이다. 눈 먼 사랑과 눈 뜬 사랑이 있는 것이 아니다. 눈 먼 사랑만이 있을 뿐이다. 이것이 얼룩이 애교점이 되고, 흉터가 숭고미가 되는 이유다.
망가진 도구는 폐기(廢棄)된다. 쓸모를 잃었기 때문이다. 연애는 쓸모를 모른다. 따라서 망가지는 법도 없다. 사랑하는 그녀가 큰 사고를 당했다고 하자. 그 때도 그녀는 손상당한 모습 그대로 '온전히' 내 앞에 존재한다. 이것이 연애다.
사랑하는 남자의 눈에는 한 팔을 잃은 그녀가 양팔을 갖춘 그녀보다 덜 온전하지 않다. 그녀는 늘 그녀로 있다. 그 점에서 연애는 예술과 상통한다. 양팔이 잘린 밀로의 비너스상은 잘린 모습 그대로 완벽하다. 그녀에게 팔을 만들어 붙인다면 오히려 엽기적(獵奇的)인 모양이 될 것이다.
사용과 향유. 이것은 인간이 자연을 대하는 두 가지 태도이기도 하다. 제주의 산과 바다와 하늘을 도구가 아닌 애인으로 대하도록 하자.
<문학평론가>
고인이 된 서양화가 김택화씨가 생전에 필자에게 했던 이야기가 생각났다. 미켈란젤로의 벽화는 금이 가고 물감이 벗겨진 것까지도 숭고미(崇高美)를 자아낸다고 했다. 이들은 향유(享有)하는 사람들이다.
그러나 향유의 대상은 그 자체가 목적이 된다. 내가 그녀를 사랑하는 것은 사용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어째서 그녀인가? 여자이기 때문에? 세상에 여자는 많다. 예뻐서? 예쁜 여자는 TV 속에 더 많다. 그 대답은 하나밖에 없다. "그녀니까."
연애는 목적이나 의도나 근거나 핑계를 모른다. 내가 그녀를 사랑하는 이유는 그녀가 그녀이기 때문이다. 그 뿐이다. 만일 그녀의 집안, 재산, 직업 따위를 보고 사귄다면 나는 그녀를 사랑으로 대하는 것이 아니라 쓸모 있는 사물, 즉 망치와 같은 도구로 대하는 것이다.
향유는 눈이 머는 것이다. 눈 먼 사랑과 눈 뜬 사랑이 있는 것이 아니다. 눈 먼 사랑만이 있을 뿐이다. 이것이 얼룩이 애교점이 되고, 흉터가 숭고미가 되는 이유다.
망가진 도구는 폐기(廢棄)된다. 쓸모를 잃었기 때문이다. 연애는 쓸모를 모른다. 따라서 망가지는 법도 없다. 사랑하는 그녀가 큰 사고를 당했다고 하자. 그 때도 그녀는 손상당한 모습 그대로 '온전히' 내 앞에 존재한다. 이것이 연애다.
사랑하는 남자의 눈에는 한 팔을 잃은 그녀가 양팔을 갖춘 그녀보다 덜 온전하지 않다. 그녀는 늘 그녀로 있다. 그 점에서 연애는 예술과 상통한다. 양팔이 잘린 밀로의 비너스상은 잘린 모습 그대로 완벽하다. 그녀에게 팔을 만들어 붙인다면 오히려 엽기적(獵奇的)인 모양이 될 것이다.
사용과 향유. 이것은 인간이 자연을 대하는 두 가지 태도이기도 하다. 제주의 산과 바다와 하늘을 도구가 아닌 애인으로 대하도록 하자.
<문학평론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