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상일의 세상읽기]해인사의 물소리
입력 : 2011. 04. 06(수) 00:00
전남 담양에 소쇄원(瀟灑園)이 있다. 스승 조광조가 죽임을 당하자 낙향한 소쇄 양산보가 지어 은거했던 '사대부의 정원'이다. 지난해 필자도 갔었다. 세상사 시름을 잊게 하는 멋진 정원이었다.

소쇄원 갔던 기억이 또 하나 있다. 오지 않는 버스를 마냥 기다리며 읽었던 정류소 벽의 낙서 하나가 이상하게 잊히지 않는다. "1년 전 둘이 왔던 소쇄원 오늘은 혼자서 다녀간다." 여행자의 감상(感傷)일까. 읽는 필자의 가슴도 저려 왔다.

비평가 롤랑 바르트는 사진에 관한 에세이집에서, 보는 이를 '찌르는'-소위 '필이 꽂히는'-사진 속의 뭔가에 대해 이야기한 적이 있다.

예컨대 여기 괴짜 천재화가 앤디 워홀의 사진이 있다. 사진 속에서 그는 두 손으로 얼굴을 가리고 있다. 바르트에 의하면, 이 사진에서 보는 이의 시선을 낚아채는 요소는 워홀의 그런 제스처가 아니라 끝이 넓적한 손톱의 불쾌한 질감(質感)이다. 이렇게 하찮지만 비상하게 인상적인 무엇을 그는 '푼크툼'이라고 불렀다.

지난 주말 해인사를 다녀왔다. 해가 지고 나서 도착해 하룻밤을 인근 여관에 묵었다. 물이 졸졸 흐르는 작은 계곡을 낀 낡지만 깨끗한 여관이었다.

흐르는 물소리가 좋아 창문을 빠꼼이 열어 놓고 잠을 청했다. 그 전날의 숙소는 도심의 모텔이었는데, 보일러 도는 소리인지 붕붕거리는 소음(騷音) 탓에 밤잠을 설쳤다.

기기(機器)로 측정하면 계곡물 흐르는 소리나 보일러 도는 소음이나 비슷한 데시빌이 나올지도 모른다. 철학자 바슐라르가 '공간의 시학'에서 했던 이런 말이 생각났다.

"내가 사는 아파트에서 이웃 사람이 밤늦게 벽에 못을 박거나 하는 경우 나는 그 소리를 '자연화'한다. 내게 들리는 모든 소리를 자연의 소리라고 생각하며 나 자신에게 중얼거리는 것이다. '저건 아카시아 나무를 쪼고 있는 딱다구리야'라고."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의 진리를 해인사의 여관방에 누워 음미(吟味)하며 잠이 들었다. 기분 좋게 자고 나서, 흐르는 물소리에 다시 눈을 떴을 때는 막 밝은 아침빛 속에 눈이 제법 내리고 있었다. 벚꽃 핀 4월에 눈이라니. 해인사의 '푼크툼'이었다.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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