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상일의 세상읽기]북의 왕자들
입력 : 2011. 03. 09(수) 00:00
김정은은 왕세자다. 왕세자는 다음 왕의 자리를 0순위로 예약해 논 왕자다. 그럼 나머지 왕자들은 뭔가. 그들은 군더더기다.

정은은 삼남이다. 장남인 정남은 외국을 떠돈 지 오래다. 가짜 여권으로 일본에 입국하려다 들켜 망신을 당한 적도 있다. 최근에는 차남 정철이 싱가포르에서 열린 에릭 클랩튼의 공연장에 나타나서 뉴스를 탔다. 그 역시 떠돌고 있음이다.

왕자는 떠돌이 생활조차 호사스럽다. 아무리 호사스럽게 살아도 그들은 이를테면 자동차 뒤칸에 싣고 다니는 스페어 타이어와 같은 존재다. 왕세자의 유고시(有故時) 갈아끼우기 위해 남겨두는 여분(餘分). 이것이 나머지 왕자들이 존재하는 이유다.

왕세자를 포함해 왕자들은 체제의 유지를 위해 필요시 언제든 갈아끼울 수 있는 기능적 존재, 즉 부품(部品)일 뿐이다. 그래서 묻게 된다. 그래도 이들이 형제일까.

독자 여러분도 읽었을 에릭 프롬의 유명한 책 '사랑의 기술'에 따르면, "형제애는 우리 모두가 '하나'라는 경험에 근거한다." 왕자들의 관계에서 이 동일성의 경험보다 더 낯선 것은 없을 것이다.

왕세자와 왕자들은 절대로 같지가 않다. 그들은 비슷하지도 않다. 왕자들 중에서 한 명이 뽑혀 전부를 차지한다. 그러고 나면 나머지 형제는 무(無)가 돼야 한다. 이것이 김정은의 형들이 밖에 나와서 떠도는 이유다. 적어도 체제 내에서는 그들은 '없는' 존재가 돼야 하는 것이다.

그러나 형제 관계는 무가 될 수 없다. 한 번 형제는 영원히 형제다. 형을 혹은 아우를 다른 사람으로 갈아끼우는 것도 불가능하다. 그 점에서 왕자들은 비록 같은 핏줄이라도 형제가 아니다.

왕이 왕자를 낳으려는-그것도 될수록 많이-이유는 왕위를 잇기 위해, 즉 하나가 유고시 나머지 중에서 꺼내 갈아끼우기 위해서다.

다소 생경(生硬)한 표현을 빌려 이야기하자면, 왕자는 존재가 아니다. 그들은 기능일 뿐이이다. 혹은 기호일 뿐이다. 이것이 왕국과 오늘날의 왕가인 재벌가의 '왕자의 난'이 피도 눈물도 없는 이유다. 왕자들은 기호다. 기호는 울 눈물도, 흘릴 피도 없다. <문학평론가>
기사에 대한 독자 의견 (0 개)
이         름
이   메   일
8298 왼쪽숫자 입력
비밀번호 삭제시 필요
송상일의 세상읽기 주요기사더보기

기사 목록

한라일보 PC버전
검색 입력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