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상일의 세상읽기]'핵에는 핵'의 허실
입력 : 2011. 03. 04(금) 00:00
요한복음은 이런 말로 시작된다. "맨처음에 말씀이 있었다. 말씀은 곧 하느(나)님과 함께 계셨다." 소설가 존 스타인벡은 1963년 노벨문학상 수상연설을 다음과 같은 말로 마쳤다. "마지막에 말씀이 있다. 말씀은 인간과 함께 있다."

신은 "있어라!" 하는 명령 한마디로 세상을 창조했다. 그렇게 창조된 세상을 인간은 "없애라!" 하는 명령 한마디로 끝낼 수가 있다. 스타인벡이 말한 대로다. "(핵을 갖게 된 이후) 인간은 인간의 가장 큰 위험이 됐고, 단 하나의 희망이 됐다."

국회의원 몇이, 북핵에 맞서 우리도 핵무기를 갖자고 주장했다. 이 주장이 위험한 말씀인가, 희망의 말씀인가는 듣는 귀에 따라 다를 것이다. 미국의 귀에는 위험하게 들렸던 모양이다. 미국은 20년 전 한국에서 거둬간 전술핵을 재배치할 뜻이 없다고 서둘러 밝혔다.

그러나 전술핵의 한반도 재배치에 가장 신경이 쓰이는 나라는 미국도 북한도 아니고, 중국이다. 처음 전술핵이 만들어진 이유가 중국이었다. 한국전쟁 때 중국군의 인해전술(人海戰術)에 혼쭐난 마국이 제한적으로 써먹을 수 있는 핵무기를 고안해냈다는 이야기다.

실로, 우리의 핵 보유 논의는 정작 겨냥한 북한은 못 맞히고 한·중 간의 문제로 과녁을 비껴 날아갈 공산이 매우 크다.

그래도 사람들은 남핵이 북핵을 억제할 것으로 믿는다. 다이나마이트를 만든 노벨도 같은 생각을 했다. 그는 "나는 세상에서 전쟁을 영구히 불가능하게 만들 가공(可恐)할 무기를 발명하기를 소망한다"고 했다. 그러나 다이나마이트가 만들어져도 전쟁은 계속됐다. 오히려 더욱 끔찍해졌다. 너무나 무서워서 감히 쓸 수 없는 무기에 대한 소망은 환상일 뿐이다.

핵무기로 핵무기를 억제한다는 생각-소위 '상호파멸전략'-은, 감정적 배설(排泄)은 될 수 있으나 이성적인 계산은 못 된다.

이 쪽이 핵을 가져도 저 쪽이 히틀러나 카다피 같으면 너도 죽고 나도 죽자고 덤빌 것이다. 다행히 저 쪽이 정상적이면, 핵 없이도 협상과 거래로도 문제를 풀 수가 있다. 어느 경우도 핵은 불필(不必)이다.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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