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상일의 세상읽기]광주와 트리폴리
입력 : 2011. 03. 02(수)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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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8 광주' 때, 미국은 시민의 편을 들지 않았다. 오히려 진압군의 편에 섰다. 그 점에 관해 훗날 철학자 김용옥은 다음과 같은 공상(空想)을 펼쳐 보였다.
"(미국 정부가, 가서 학살을 막으라고) 용산에 있는 미 8군 군인 아저씨들을 광주로 보낸다. 미국 탱크가 우르르르 광주로 입성한다. 광주 시민들은 개선장군처럼 입성하는 미군 아저씨들을 환호한다. 호산나를 부른다."
'호산나'는 예수가 예루살렘에 입성할 때 군중이 환영하며 외쳤던 구호다. '야훼여, 바라옵나니 이제 구원하소서'라는 뜻이다. 5·18 때 미군이 그랬다면 광주 시민들은 그들을 메시아로 마중했을 것이다.
물론 미국은 그렇지 않았다. 김용옥은 그것이 미국 제국주의의 한계라고 했다. 인심도 얻고 이익도 챙기는 '꿩 먹고 알 먹는' 고도의 전술을 미국은 모른다는 것이다.
지금 리비아의 트리폴리에서, 미국은 바로 그런 '꿩 먹고 알 먹을' 기회를 다시 맞고 있다. 미국도 광주 때와는 달라졌다. 오바마 대통령은 카다피가 물러나야 한다고 했다. 힐러리 클린턴 장관은 거기에 한마디 덧붙였다. "가능한 한 빨리!"
그러나 그런 미국을 나중에 리비아 국민들이 얼마나 고마워할지 의문이다. 이럴 때 보면, 미국은 독재자를 거드는 데는 재빠른데 민주화를 거드는 데는 한없이 느리다. 벌써부터, 리비아의 대량학살(虐殺) 방지에 미국이 너무 늦게 그리고 너무 느리게 대처하고 있다는 비난 여론이 일고 있다.
미국은 계속 눈치를 보다가 카다피의 몰락이 거의 확실해지자 뒤늦게 시민의 편에 섰다. 이집트의 무바라크 퇴출 때도 미국은 그랬다. 미국이 왜 이 모양인가. 대답은, 미국이 너무 쉽게 먹으려 들기 때문이다.
미국의 저명한 칼럼니스트인 노만 솔로먼에 따르면, 미국에게 전쟁은 투자(投資)다. 필자는 그런 미국을 도덕적으로 비난할 뜻이 없다. 비난해 봐야 소용없음을 알기 때문이다.
딱한 것은 미국이 투자가로서도 용기가 부족하다는 사실이다. 시민의 편에 '올인'을 했다가 만에 하나 카다피가 되살아났을 때의 리스크를 무릅쓸 용기 말이다. 미국은 지금도 카다피가 두려운 것이다. <문학평론가>
"(미국 정부가, 가서 학살을 막으라고) 용산에 있는 미 8군 군인 아저씨들을 광주로 보낸다. 미국 탱크가 우르르르 광주로 입성한다. 광주 시민들은 개선장군처럼 입성하는 미군 아저씨들을 환호한다. 호산나를 부른다."
물론 미국은 그렇지 않았다. 김용옥은 그것이 미국 제국주의의 한계라고 했다. 인심도 얻고 이익도 챙기는 '꿩 먹고 알 먹는' 고도의 전술을 미국은 모른다는 것이다.
지금 리비아의 트리폴리에서, 미국은 바로 그런 '꿩 먹고 알 먹을' 기회를 다시 맞고 있다. 미국도 광주 때와는 달라졌다. 오바마 대통령은 카다피가 물러나야 한다고 했다. 힐러리 클린턴 장관은 거기에 한마디 덧붙였다. "가능한 한 빨리!"
그러나 그런 미국을 나중에 리비아 국민들이 얼마나 고마워할지 의문이다. 이럴 때 보면, 미국은 독재자를 거드는 데는 재빠른데 민주화를 거드는 데는 한없이 느리다. 벌써부터, 리비아의 대량학살(虐殺) 방지에 미국이 너무 늦게 그리고 너무 느리게 대처하고 있다는 비난 여론이 일고 있다.
미국은 계속 눈치를 보다가 카다피의 몰락이 거의 확실해지자 뒤늦게 시민의 편에 섰다. 이집트의 무바라크 퇴출 때도 미국은 그랬다. 미국이 왜 이 모양인가. 대답은, 미국이 너무 쉽게 먹으려 들기 때문이다.
미국의 저명한 칼럼니스트인 노만 솔로먼에 따르면, 미국에게 전쟁은 투자(投資)다. 필자는 그런 미국을 도덕적으로 비난할 뜻이 없다. 비난해 봐야 소용없음을 알기 때문이다.
딱한 것은 미국이 투자가로서도 용기가 부족하다는 사실이다. 시민의 편에 '올인'을 했다가 만에 하나 카다피가 되살아났을 때의 리스크를 무릅쓸 용기 말이다. 미국은 지금도 카다피가 두려운 것이다. <문학평론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