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상일의 세상읽기]원빈과 현빈
입력 : 2011. 02. 23(수)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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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전업계의 맞수인 삼성과 LG가 '빈의 전쟁'을 치르고 있다. 삼성은 현빈, LG는 원빈을 광고모델로 세웠다. 두 사람 모두 눈부신 꽃미남이다. 누가 더 나은가.
연기를 묻는 질문이라면 그 대답은 쉽다. 원빈이 낫다. 영화 '태극기 휘날리며'나 '아저씨'에서 보여준 원빈의 연기를 현빈은 아직 보이지 못하고 있다.
원빈은 스폰지가 잉크를 빨아들이듯 작중 캐릭터에 푹 젖어 연기를 한다. 잉크를 머금은 스폰지는 그 자체 잉크가 된다. 원빈의 연기가 그렇다.
그 점이 현빈은 부족하다. 현빈의 연기는 '나는 현빈'이라는 자의식을 완전히 털어내지 못하는 듯이 보인다. 왜 그럴까.
그것은 작중 캐릭터가 배우의 꽃미남 이미지를 완전히 덧씌워 지우지 못하기 때문이다. 다른 꽃미남 배우들과 비교해 보면 그 점이 분명해진다.
예컨대 드라마 속에서 송승헌은 꽃미남 그대로다. 숯검댕이 눈썹의 미간(眉間)을 약간 찌푸려 인상을 쓰는 것이 그가 보여주는 연기의 거의 전부다. 장동건은 다르다. 그는 영화만 찍으면 돌연 사람이 바뀐다. 누가 말했다. 장동건은 잘 생긴 것을 콤플렉스로 느끼는 배우라고. 정말 그런 것 같다.
배우에게 꽃미남이라는 것은 유리하기보다 불리하다는 것을 원빈은 알고 있다. 현빈도 알까. 예고편만 보았지만, 영화 '만추(晩秋)'에서 현빈은 완전히 달라져 있었다.
'만추'에서 현빈의 역할은 사랑이 필요한 여자들에게 '서비스'를 해주며 하루하루를 연명(延命)하는 건달이다. 여자를 다루는 표정과 몸짓이 '선수'답게 능글맞다. 그러나 그런 자신에 대해 어쩔 수 없이 느끼게 되는 비애의 그림자. 잘 생긴 얼굴만 갖고는 이런 미묘복잡한 역할을 잘 해낼 수가 절대로 없다.
본영화를 보아야 알겠지만, 예고편에서 본 현빈은 젊은 날의 알랭 들롱을 생각나게 했다. 연기가 무척 뛰어났다는 뜻이다.
잘 생긴 배우일수록 망가져야 연기가 산다. 거창하게 되받자면, 철학자 헤겔은 이런 자기부정이야말로 모든 발전의 계기라고 했다. "마누라 빼고 다 바꾸자"고 한 재벌총수가 이야기하려고 했던 것도 이것이었다. <문학평론가>
연기를 묻는 질문이라면 그 대답은 쉽다. 원빈이 낫다. 영화 '태극기 휘날리며'나 '아저씨'에서 보여준 원빈의 연기를 현빈은 아직 보이지 못하고 있다.
그 점이 현빈은 부족하다. 현빈의 연기는 '나는 현빈'이라는 자의식을 완전히 털어내지 못하는 듯이 보인다. 왜 그럴까.
그것은 작중 캐릭터가 배우의 꽃미남 이미지를 완전히 덧씌워 지우지 못하기 때문이다. 다른 꽃미남 배우들과 비교해 보면 그 점이 분명해진다.
예컨대 드라마 속에서 송승헌은 꽃미남 그대로다. 숯검댕이 눈썹의 미간(眉間)을 약간 찌푸려 인상을 쓰는 것이 그가 보여주는 연기의 거의 전부다. 장동건은 다르다. 그는 영화만 찍으면 돌연 사람이 바뀐다. 누가 말했다. 장동건은 잘 생긴 것을 콤플렉스로 느끼는 배우라고. 정말 그런 것 같다.
배우에게 꽃미남이라는 것은 유리하기보다 불리하다는 것을 원빈은 알고 있다. 현빈도 알까. 예고편만 보았지만, 영화 '만추(晩秋)'에서 현빈은 완전히 달라져 있었다.
'만추'에서 현빈의 역할은 사랑이 필요한 여자들에게 '서비스'를 해주며 하루하루를 연명(延命)하는 건달이다. 여자를 다루는 표정과 몸짓이 '선수'답게 능글맞다. 그러나 그런 자신에 대해 어쩔 수 없이 느끼게 되는 비애의 그림자. 잘 생긴 얼굴만 갖고는 이런 미묘복잡한 역할을 잘 해낼 수가 절대로 없다.
본영화를 보아야 알겠지만, 예고편에서 본 현빈은 젊은 날의 알랭 들롱을 생각나게 했다. 연기가 무척 뛰어났다는 뜻이다.
잘 생긴 배우일수록 망가져야 연기가 산다. 거창하게 되받자면, 철학자 헤겔은 이런 자기부정이야말로 모든 발전의 계기라고 했다. "마누라 빼고 다 바꾸자"고 한 재벌총수가 이야기하려고 했던 것도 이것이었다. <문학평론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