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상일의 세상읽기]항공모함과 덕판배
입력 : 2011. 01. 14(금) 00:00
이소룡의 '정무문', 이연걸의 '황비홍', 견자단의 '엽문'은 중국이 외세(外勢)에 눌려 살던 시절 중국의 자존심을 지켰던 무술인의 이야기다.

이렇듯 외세는 중국의 트라우마(정신적 상처)다. 중국인들이 바다를 꺼리는 것도 그런 강박감 때문이다. 서양이 뭔가. 서쪽의 '바다'가 아닌가.

정화(鄭和)와 같은 인물도 있긴 했다. 수백 척의 선단을 이끌고 동남아, 중동, 아프리카까지 바닷길을 누볐던 인물이다. 명나라 때였다. 중국인들은 심지어 정화가 콜럼버스보다 먼저 아메리카 신대륙을 발견했다고 믿는다.

그러나 정화는 서양계 환관(宦官)이었다. 그나마 문신들의 반대로 1433년 그의 선단은 해체당하고, 그 이후 중국에서 무역은 범죄였다.

그랬던 중국이 항공모함을 만든다고 한다. 거의 다 만들어 7월 진수식(進水式)을 갖게 될 거라고 한다. 국력이 커져 외세에 대한 콤플렉스가 사라지자 갑자기 바다에 대한 욕심이 생긴 것이다. 아니면, 외세 콤플렉스 때문에 오히려 더 그러는 것일 수도 있다.

항공모함 하니까 난 생각인데, 덕판배가 있었다. 옛 제주 해민들이 탔던 배다. 덕판배에 대해서는 제주대 송성대 교수의 힘차고 인상적인 논문이 있다. 그는 덕판배를 '미니 항공모함'이라고 불렀다. 다음의 서술을 보면 그런 명칭이 꽤 그럴싸해 보인다.

"조랑말을 30마리까지 실을 수 있었고, 15세기 말 최부(崔溥)의 표해록(漂海錄)에 의하면 43명이 탔을 만큼 크고 튼튼했다. 단순한 화물선이 아니었다. 조선배보다 날쌔고 일본배보다 견고했다. 싸움배로 불렸듯이 상륙용, 돌격용, 충돌용 어선이요, 상선이요, 전선(戰船)으로-내해용(內海用)의 거북선과도 달리-대양을 누빌 수 있는 다목적 배였다."

몽골이 일본 원정을 위해 제주배 100척을 요청했다는 기록이 있다. 제주배의 그런 능력을 몽골도 알고 있었다는 얘기다.

'삼국지'의 오나라 손권이 수전(水戰)에 쓸 요량으로 동현인(東縣人=탐라인)을 잡으려 했으나 그들의 배가 워낙 빨라 따라잡지 못했다는 기록도 있다. 이때의 제주배도 십중팔구 덕판배였을 것이다.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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