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상일의 세상읽기]막말에 대하여
입력 : 2010. 12. 31(금) 00:00
천정배 민주당 최고의원이 말했다. "이명박 정권 확 죽여 버려야 하지 않겠느냐"고. 그러고는 분노(憤怒)한 민심을 대변한 말이라고 했다.

그러나 막말이다. 대통령 개인이 이닌 정부를 겨냥한 말이라고 해도 '죽인다'는 표현은 심했다.

국민의 정부 때였다. 김홍신 한나라당 의원이 김대중 대통령을 지목해 말했다. "염라대왕에게 끌려가면 바늘로 뜰 시간이 없어 공업용 미싱으로 입을 드륵드륵 박아야 할 것이다."

김 씨는 소설가다. 소설 '인간시장'은 그에게 이름과 돈을 한꺼번에 안겨주었다. 문학성은 별로 없는 무협지 같은 소설이지만, 배설(排泄)하듯 쏟아내는 입담 하나는 화끈하다. 그러나 '공업용 미싱' 입담은 재미를 못 봤다. 김 씨는 재판을 받고 벌금을 물어야만 했다. 정치생명도 거기서 끝났다.

프로이트는 두 종류의 농담(弄談)이 있다고 했다. 뭔가를 노린 농담과 순수한 농담. 프로이트에 의하면, 그 중 후자가 더 높은 수준의 농담이다.

뭔가를 노린 농담, 풍자(諷刺), 독설(毒舌)도 수준이 있는 것은 지키는 한 가지 룰이 있다. 그것은 '끝까지 가지 않는다'는 룰이다.

예컨대 디즈니 만화에서 고양이는 생쥐에게 늘 당하기만 한다. 생쥐의 꾀에 걸려 고양이는 유리처럼 부서지거나 무거운 것에 눌려 납작해지기 일쑤다. 그러나 다음 장면에서 보면 고양이는 다시 원래대로 돌아와 생쥐를 쌩쌩 쫓고 있다.

만일 고양이가 죽는 것으로 장면이 끝난다면 보는 사람이 즐거울 수 없고, 따라서 디즈니가 지금처럼 사랑을 받지도 못할 것이다. 좋은 독주(毒酒)가 일단 삼키고 나면 기분 좋은 향기가 올라오듯이, 독설도 끝까지 가지 않고 남겨 풍기는 뒷맛이 있어야 한다.

막말이 뭔가. 마지막까지 간 말이다. 마지막에 해야 하는 말이기도 하다. 그래서 막말은 조커처럼 써야 한다. 트럼프에서 조커는 가장 센 패지만 한 번밖에 쓸 수가 없다.

딱 한 번 써야 하는 말, 그러므로 몹시 아껴 써야 하는 말, 더 필요한 때가 올 것에 대비해 결국은 안 쓰게 되고 마는 말. 막말은 그런 것이다(그런 것이 돼야 한다).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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