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기훈의 제주마을 백리백경.. 가름 따라, 풍광 따라] (94)표선면 성읍1리
입력 : 2025. 08. 08(금) 03:00수정 : 2025. 08. 28(목) 16:29
고성현 기자 kss0817@ihalla.com
오백년 정의현 중심지 민속마을로 거듭 나다
[한라일보] 1416년, 제주도는 3읍 구조로 새롭게 편제되었다. 시흥에서 법환까지 이르는 제주섬 남동부가 정의현 영역, 성산읍 고성리에 있던 읍성이 동쪽으로 치우쳐 있어서 정의현 관할지역을 아우르기에 불합리한 점이 많았다. 더욱 중요한 것은 정의현이 관할하는 목마장이 멀어 관리하는 데 어려움이 많았던 것. 새로운 읍성 후보지 중에 마을 이름이 '진사리'로 옮겨서 성을 쌓았다. 1423년, 세종 때 일이다. 해안가에서 8km 떨어진 비교적 중산간 지대에 읍성을 설치한 이유는 주변에 수량이 풍부한 천미천이 자리하고 있고, 영주산을 위시한 오름으로 둘러싸인 분지형 평탄지대가 형성되어 있어서 생활환경에 유리한 자연조건을 갖추고 있었기 때문이다.

고윤식 성읍1리 이장
오백년 세월 정의현의 중심지 역할을 수행하면서 정형화 된 성읍1리 사람들의 의식구조는 할머니들의 대화에서 발견할 수 있다. 표선에 장이 서는 날 "촌에 장보러 가자!" 아무리 세월이 바뀌어 상권이 발달한 곳이라 하더라도 표선은 읍성 사람들의 관점에서는 촌이다. 이 주변 지역의 중심은 성읍이라는 가치관이 뼈 속 깊이 흐르는 마을. 중산간 지대 도로망이 발달하면서 성읍1리는 새로운 형태의 발전 가능성을 열어가고 있다. 사통팔달에 가까운 교통의 요지가 된 것이다. 자동차 시대에 자연스럽게 민속마을이 지닌 관광객 유입 인프라로 기능하게 되고. 1984년 성읍1리는 놀라운 변화와 마주하게 된다. '국가지정 중요민속자료 제188호'로 마을 전체가 지정된 것이다. 읍성이 있었던 마을이면서 전통적인 초가와 마을 취락구조가 옛 모습을 많이 간직하고 있었기 때문. '옛것을 어떻게 보존할 것이냐'라는 문화재청 시각의 지배를 받게 된 것이다. 관광객 유입이라는 순기능 못지않게 적지 않은 역기능을 발생시켰다고 한다. 조상 대대로 정겹게 살아온 마을 사람들이 관광이라는 산업구조에 노출되면서 마주하게 된 현실은 '가옥 내 주민편의시설 설치기준' 이라는 자료에서 발견할 수 있었다. 내용의 일부를 소개하면 이렇다. 건물 외부로 시멘트, 금속, 플라스틱 등 현대적인 재료가 노출되어서는 안 된다. 생활의 필요에 의해 불가피하게 신축이 필요할 경우 정해진 시설 기준에 따라야 한다. 그 시설기준의 내용을 모두 파악해보면 민속마을이라는 명칭 밑에 주민들의 행복추구권이 결박당하고 있는 것.

마을공동체라고 하는 무형의 정신자산에 대한 투자 없이 옛것이라고 하는 외관의 가치에만 몰두하다보니 졸속행정의 전시장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라는 거친 평가를 하는 주민들이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일관헌을 세 번이나 부수고 다시 짓고 했다는 것이다. 이러한 과정에서 발생시킨 삶의 질을 보여주는 것은 초등학교 학생수가 급감하여 왔다는 것이다. 젊은 부부가 아이를 키우며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는 마을환경이 더욱 시급한 과제로 대두되고 있는 것이다.

고윤식 이장에게 성읍1리가 보유하고 있는 가장 큰 자부심을 물었더니 너무 뼈 있는 대답을 간명하게 드러냈다. "유지 관리." 마을공동체가 민속마을이라고 하는 타이틀을 지켜내기 위하여 끊임없이 노력하며 살아왔다는 표명이다. 아침 6시에 문을 여는 리사무소는 전국을 찾아도 없을 것이다. 부지런함이라는 단순 용어로 설명하기에는 모자란 점이 많다. 이유는 '문제점 파악'을 위한 주민들의 이야기를 밭이라고 하는 일터로 가기 전에 마을회관에 들려 담소하는 형태로 자연스럽게 소통하는 것이다. 참으로 치열하게 성읍민속마을이라고 하는 자존심을 지켜내기 위해 헌신하였던 주민들의 마음고생과 실천역량을 생각하면 가슴이 아프다고 한다. 의식 있는 마을 어르신들의 한결같은 생각은 이렇다. 지금의 행정논리대로 간다면 100년이 지나도 바뀔 수 없을 것이라는 41년 세월의 경험. 국가가 민속자료로 지정해놓고 주민피해에 대해 무책임의 극치를 보여주는 현장이 성읍1리라고 하는 주장에 수긍이 간다.

이 상태로 학교에 학생이 없는 마을이 된다면 성읍1리 다음 세대가 민속마을을 유지관리 할 수 있는 지 묻게 되는 현실. 극복 방안이 나와야 한다.

<시각예술가>





여름 햇살, 그 빛과 그림자
<수채화 79㎝×35㎝>


초가와 돌담을 더욱 아름답게 하는 것은 초록 나무다. 그 것도 연륜이 오래된 나무. 그릴 것으로 넘쳐나는 마을에서 찾은 면적 대비다. 너무도 단순하고 평면적인 분할 구도에 탐닉하게 된 것은 성읍1리라고 하는 마을이 보유한 문화재적 가치를 뛰어넘는 자연과의 조화다. 화면에는 등장하지 않지만 돌담의 원경, 그러니까 하단 오른쪽에는 맞은편에 있는 거대한 고목의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다. 그에 상응하는 그림자가 초가의 처마에 의하여 벽의 색을 두 개의 요소로 나누고 있다. 그리고 이 모든 대비효과를 가능하게 하는 나무의 명암과 색채가 자연과 인간이 어떤 방식으로 만나 이웃하여 살아가게 되는 지 보여주는 것 같아서 그렸다. 이 마을이 보유한 자연친화적 요인을 민속마을이라고 하는 선입견 밖에서 바라보고 싶어서 그린 것이다. 초가집에서 유년시절을 보낸 필자는 흙과 돌담으로 쌓은 저 초가벽이 얼마나 정겹고 아름다운 예술품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자연에서 얻은 것으로 집을 짓고 살았으니 그 안에 사는 사람도 자연이었으리라는 무모한 확신을 그리는 내내 떠올렸다. 이 유서 깊은 마을에서 집담 넘어서 들려왔을 학동의 글 읽는 소리. 그리고 완고한 선비이신 할아버지의 꾸지람소리도 들려올 듯하다. 읍성이었으니 향교가 있었고, 인근 마을에서 향교에 학문을 닦으러 왔을 터. 외형적인 옛 것이 아니라 내면의 풍요로웠던 이 마을의 밝은 햇살을 그렸다. 아래로 빛과 그림자가 교차하며 오늘의 현실이 되었음을 확인하고자.



정의현 돌하르방
<연필소묘 79㎝×35㎝>


성읍1리 정의현 돌하르방은 제주목 돌하르방과 다르고 대정현 돌하르방과도 다른 독자적인 메시지가 있다. 풍경화이기에 앞서서 성담과 돌하르방이라고 하는 상징성을 하나의 시각적 심벌리즘 속에 녹여내고 싶어서 그린 것이다. 8월 오후 뙤약볕을 받아 눈부실 정도로 밝은 이미지의 성읍돌하르방. 이 고을이 추구하던 인격적 마인드가 상징화 된 형태라고 생각한다. 제주목 지역의 돌하르방처럼 우락부락함이란 찾아볼 수 없다. 德이라고 하는 가치관을 삶의 지표로 삼고 살아가던 사람들의 원만한 성품을 그대로 표현하고 있다. 석공의 제작 의도이기도 하거니와 의뢰한 주체세력의 요구하는 이상적 가치를 구현하고자 노력한 얼굴이다. 필자는 3읍 돌하르방 중에 정의현의 이 돌하르방을 제주인의 표상이라 여기며 살아왔다. 그 누구에게도 해를 끼치지 않을 품성이 돌에 의해서 만들어졌다는 의미다. 다공질 현무암으로 제작된 연유로 오랜 세월을 지나며 입모양은 마모되어져 보인다. 그래도 전체적인 윤곽과 정겨운 손동작은 품성이 어떠한 분이라는 것을 느낄 수 있게 한다. 곡면의 흐름이 오묘하게 흐르고 있기에 그리기에 참으로 까다로운 형태다. 성담을 배경으로 그리니 고전적인 이미지와 동시에 윤관이 도드라지는 판화적 강렬함이 작동하게 된다. 돌하르방의 구멍을 바느질 하듯 한 땀 한 땀 그려나가는 과정을 통하여 얻어낸 모습이다. 제주목 돌하르방으로 전형화 된 돌하르방에 온화한 충격을 가했으면 하는 희망을 가지고 성읍돌하르방의 개성을 살리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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