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기훈의 제주마을 백리백경.. 가름 따라, 풍광 따라] (93)구좌읍 덕천리
입력 : 2025. 07. 25(금) 02:00수정 : 2025. 08. 10(일) 16:59
김미림 기자 kimmirimm@ihalla.com
덕이 있는 물, 모산이물 품은 자연유산마을
[한라일보] 세계자연유산 지구 마을 중에서 가장 큰 면적을 가지고 있어서 주민들의 자부심은 자연환경에 대한 애착에서 나온다. 오름으로 지경을 잡으면 위에서부터 식은이오름, 종재기악, 북오름, 흙붉은오름, 어대오름이 펼쳐져 있다. 옛이름은 검흘이라고 호칭했다고 하는데 그 뜻은 비가 오면 밭의 토질이 검고 질퍽질퍽하기 때문에 '검을' '검얼'이라고 불리게 됐고 지세가 평탄하지 않아서 우뚝한 동산이 많아 흘(屹)자를 쓰게 됐는데 이는 선흘, 와흘, 대흘, 남흘, 등 지명과도 통한다는 것이다. 그러다가 마을 중심에 '모산이물'이라는 못(池)이 있는데 주민들은 항시 이 물이 '덕이 있는 물'이라 여겨서 그 의미에서 따온 德泉里라고 정했다. 상덕천은 고씨가 15대, 하덕천은 조씨가 12대 이어온 것으로 보아서 창촌은 450년 정도로 보고 있다. 덕천리의 지세는 바위가 많고 굴이 많다는데서 독특한 고유지명을 보유하고 있다. 행사왓, 사근이동, 사수락, 사수두, 노사수(노사니물) 등 뱀 사(蛇)자가 붙은 지명이 많음은 굴과 뱀과의 관계를 보여주는 사례라고 한다. 자연마을은 상덕천과 하덕천 둘이다. 주민들이 상부상조 하면서 살아가는 인정미 넘치는 마을이다.

강호진 덕천리 이장
어대오름 등 크고 작은 오름들이 군락을 이루고 있으며 만장굴과 비자림, 산굼부리를 연결하는 중산간마을로 덕천에서 만장굴까지 조성된 왕벚나무 가로수길, 청정함을 품고 있는 다양한 농산물이 주민들의 정성 속에서 자라고 있다.

4·3 전까지만 해도 큰곶도(대편동) 된밭(化田) 등에는 솥과 보습, 뱃(밭을 일구는 쟁기의 부속품) 등을 만들었다고 한다. 지금도 그 흔적이 남이 있다. 제주 동부지역 유일의 불미터였다는 것. 마을 어르신들의 말씀을 종합해보면 어대오름 동쪽 양질의 찰흙이 있는 곳에서 기와를 굽고, 그 찰흙으로 쇳물을 녹여 솥이나 농기구를 만들 수 있는 틀을 제작할 수 있었다고 한다. 흙과 함께 필수적인 땔감을 인근 오름에서 풍부하게 구할 수 있었기에 가능했던 환경적 요인이었다. 옛날 덕천마을은 그러한 수입원을 기반으로 다른 마을에 비해 기와집이 대부분인 부자마을이었다고 한다. 지금도 간혹 농경지에서 기와 파편이 발견되지만 오래 전에는 솥과 농기구를 사러 많은 사람들이 찾아왔던 마을. 중산간 마을이라 목축 중심으로 생각하기 쉽지만 이런 독특한 역사가 서려 있는 곳이다.

4·3 피해를 많이 본 마을이다. 소개령 이후 김녕리 등 바닷가 마을로 내려가서 살다가 올라와서 재건한 모습이 지금의 덕천리다. 상덕천과 하덕천 할 것 없이 집터로 보이는 곳이 수두룩하다. 다시 돌아오지 못한 사람들의 공간. 그 아름답던 사람들의 마을은 정치이념의 광풍에 무너지고 다시 돌아와 불굴의 의지로 조상 대대로 살아온 마을을 새로운 모습으로 변모시킨 것이다.

강호진 이장에게 덕천리가 보유하고 있는 가장 큰 자부심을 묻자 자신감 있게 대답했다. "모돠드는 거마씀" 그러면서 리사무소 한쪽에 가득 쌓여 있는 의자들을 가리킨다. 마을에 무슨 현안이 생기면 함께 모여 논의하고 더 좋은 방향을 위한 지혜를 모으는 전통을 가장 큰 마을공동체의 자긍심으로 여기는 것이다. '모돠든다'는 제주어의 의미 속에는 강한 결속력과 함께 마을의 일을 자신의 일처럼 생각하거나 오히려 자기 집안의 일보다 우선 순위에 두는 문화를 함축하고 있다. 어떤한 마을의 현안도 모여서 함께 논의하는 구조 속에서 공동체적 소통과 주인의식을 증폭시키는 제주의 전통적 정신문화가 엄연하게 살아 숨쉬는 마을이다. 오래전부터 필자가 덕천리에서 느꼈던 감정이 한 세대가 흐른 지금도 살아 숨 쉬고 있는 모습에서 깊은 감동이 밀려온다. 안타까운 것은 이러한 결속력을 기반으로 세계자연유산마을이라는 타이틀에 걸맞은 사업들을 추진 할 수 있도록 정책적 지원이 뒤따르지 못하고 있다는 현실이다. 마을공동체가 보유하고 있는 60만 평의 토지를 활용한다면 세계적인 명소로 만들 수 있는 마을임에도 구호와 타이틀을 강조할 뿐 행정력은 어떤 미래지향적 비전도 제시하고 있지 못하다는 현실. <시각예술가>



자연의 품속에
<수채화 79㎝×35㎝>

상덕천 마을 안길을 돌아다니며 평온한 느낌을 향유하다가 만난 모습을 그렸다. 오래된 기억을 메시지로 전달하기 위해 연필소묘를 선택하게 된 것이다. 채도를 모두 빼고 오직 명도가 지닌 광선의 강약으로 질감들을 뽑아내는 작업을 한 것이다. 집 뒤에 엄청 큰 나무들이 병풍처럼, 어떤 위대함의 품속처럼 서있고 그 앞에 집을 지었던 사람들의 마음을 그리려 했다. 그냥 자연이 품어주는 삶. 초록 자연이 새의 둥지라고 생각하며 살아온 사람들의 가치관과 철학이 그대로 풍경이 돼 나타난 것이다. 돌담을 모두 감싸고 있는 담쟁이 잎들이 7월의 뙤약볕 아래서 눈부시게 빛나고 있음을 향유하고 있는 것이다. 변소의 환기 기둥마저도 정겨움으로 다가오는 이 빛의 메아리들. 사람이 어디에 사는가 하는 것이 '어떻게 사는가'와 연동돼져 있다는 주장에 동의하지 않으나 이 그림을 그리면서 부정 할 수는 없게 됐다. 슬레트 지붕이 새마을운동 시절에 지붕개량한 것이라면 벌써 반백년의 세월이 흘렀을 것이다. 지난날들이 모두 저 지붕 아래서 지나갔을 터이니 어떠한 시간성을 태양광선과 함께 노래하고 있구나. 자연유산이라고 하는 거대한 지질학적 관점이 휘황찰란 해보여도 이 소박한 자연주의를 앞서지는 못한다. 세계자연유산마을에 사는 사람들이 지니고 있는 심성이 소중한, 잃어서는 안될 그 무엇을 이미 실천하고 '동일체가 돼 있다' 라는 사실을 그리려 한 것이다. 온통 초록이니 채색을 한들 상상력의 제약요인으로 작용할 것이 뻔하기에.



흙과 숲
<수채화 79㎝×35㎝>

극명한 차별성을 그렸다. 섬 제주가 화산도라는 것을 입증하는 흙. 화산회토로 이뤄진 밭. 이 일대가 세계자연유산으로 지정된 것은 거문오름에서 만장굴에 이르는 지구별에서 지질작용이 그 희귀성을 인정 받았기에 그렇다면 그 영향이 빚어낸 흙들은 또한 엄청난 학술적 가치를 지니고 있는 것이다. 그러한 내용을 그리려 한 것이 아니라 시각적 매료 때문이다. 다른 지역에 비해 갈색이 많이 사라진 짙은 무게감이 태양광선을 받아서 오묘한 빛깔로 다가오기 때문에 그린 것이다. 이 곳의 위치는 우리가 알고 있는 놀라운 인물, 거상 김만덕 일가의 비석이 있는 곳을 찾아가는 길에 만나게 된 것이다. 기록에 의하면 김만덕의 부모는 덕천리에서 살았다고 한다. 지금도 그 친척 후예들이 살고 있고. 여덟 살 되던 해에 돌림병으로 부모님이 2남 1녀 아이들을 남기고 사망했다. 이후에 김만덕이라고 하는 소녀의 일생을 덕천리를 떠나서 파란만장한 인생을 살아간다. 거상으로 성장해 흉년에 굶어 죽는 이들을 살려낸 선행을 통해 세상을 감동시킨 장본인이다. 그녀의 고향이라고 할 수 있는 곳에서 그 혈족들의 묘지를 찾아가다가 만난 풍경에 더욱 감동해 그린 것이다. 하늘과 땅 사이에 숲이 있을 뿐이다. 화면 안에서는 그렇다. 자연주의자들의 마을다운 메시지를 만나니 기뻐서 신바람 나게 연필담채화 기법으로 숲을 그려나갔다. 땅에 대비되는 하늘은 어찌해 저리도 밝은가? 흙이 베푸는 마음과 김만덕의 마음을 동치 시키고 싶은 억지를 부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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