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기훈의 제주마을 백리백경.. 가름 따라, 풍광 따라] (96)성산읍 신산리
입력 : 2025. 09. 12(금) 03:00
김미림 기자 kimmirimm@ihalla.com
금닭이 알을 품은 형상 가진 마을공동체
[한라일보] 마을 대로변에 펄럭이는 제2공항 반대 깃발들이 먼저 이 마을이 10년째 마주하고 있는 현실을 보여주고 있다. 격앙된 감정들이 함축적으로 들어 있는 저 깃발의 의미를 생각하면 가슴이 아프다. 이웃과 소박한 정을 나누며 500년 가까이 살아온 주민들에게는 날벼락 같은 일이 벌어진 상황이다. 과연 마을단위가 보유한 존재가치는 무엇이며 정치와 행정에서 바라보는 경제적 관점 앞에서 무의미한 것인지 묻고 또 묻게 된다. 마을 어르신 한 분의 목소리가 모든 마음을 대변한다. "죽어도 떠날 수 없는 것은 죽는 한이 있더라도 지켜내고 싶은 가치가 있다는 것이다." 사회주의 국가가 아니라 민주국가에 살고 있는 국민은 조상 대대로 가꾸며 살아온 신산리 주민들의 삶의 의미 속에 녹아있는 행복추구권이 보장돼 있다. 단순한 애향심을 뛰어넘어 마을의 존립과 관련된 일이기 때문에 '결사반대'라는 구호가 무서운 현실이 되어 다가온다. 지켜내고야 말겠다는 신산리의 역사는 다가올 미래이기 때문이라고 한다.

강재표 신산리 이장
이 마을의 옛 이름은 '그등애'다. 문헌에 나타난 마을이름의 변천은 말등포, 말등촌, 귿등개, 그등애로 불러오다가 1700년대 후반에 풍수지리가에 의하여 신산리로 개명돼 오늘에 이른다고 한다. 설촌 초기에는 속칭 신술목 부근에 20여 호가 살다가 식수 사정이 여의치 않아 바닷가 용천수가 풍부하고 해산물 획득 등 생활하기 좋은 환경을 가진 안카름이라는 중하동 지역으로 내려와 살게 되었다고 한다. 이는 사료 기록과 족보 등에 의하여 확인되는 역사이고 신산리 고인돌이 간직하고 있는 삶의 뿌리는 어떤 외부적 경제논리로도 무너뜨리지 못할 것이다. 마을 주봉인 독자봉의 완만한 산록부분 돌선돌에 위치한 고인돌은 남방식 유형을 가지고 있다. 제주도 고인돌 형식 중에 비교적 이른 시기라고 할 수 있는 탐라국 시기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금계포란형 풍수를 가진 마을이다. 금닭이 알을 품은 형상을 하고 있기에 참으로 귀한 터전이라는 뜻으로 풀이된다. 그래서 포근한 느낌을 받게 되는 것일까? 포구 부근에서는 지대가 낮아서 한라산을 볼 수 없다. 3㎞나 되는 해안선을 따라 검은 갯바위 지대가 펼쳐진다. 해안도로를 따라 몇 년 사이에 카페나 커피숍이 많이 들어서는 현상은 신산리 해변이 지닌 편안한 느낌이 탐방객들을 매료시키고 있어서 일출과 함께 검은 바위해변에 밀려드는 파도와 수평선에서부터 길게 다가오는 윤슬의 신비로움을 만끽할 수 있는 평화의 해변이다. 여기에 비행기가 이착륙하면서 굉음을 낸다면 파괴될 것은 이 아름다운 해변의 여유 또한 포함될 것이기에 안타까움을 더하게 된다.

강재표 이장에게 신산리가 보유하고 있는 가장 큰 자긍심을 묻자 한 단어로 대답했다. "포용력" 이는 마을 결속력의 기반이 되는 공동체정신의 뿌리와 같다고 했다. 상반된 의견을 가진 이웃에게 자신의 주장을 강요하지 아니하고 존중의 미덕을 통하여 함께 살아갈 길을 찾으려는 자세. 배타성이 설 자리가 없는 마을이라는 자부심을 강조했다. 사람과 사람이 한 마을에서 살아간다는 의미 덕택에 신산리가 추구하는 바른길을 함께 손잡고 나갈 수 있다는 확고한 신념. 이토록 마음이 아름다운 곳에 닥친 제2공항의 시련을 생각한다. "이러한 공감대를 가진 많은 분들이 전도적인 차원에서도 귀중한 의지를 보태주시니 힘이 납니다."라는 감사 표시는 어떤 구호보다 울림이 크다. 마을 원로 한 분의 전하는 질문을 기록하면서 필자 또한 커다란 반성을 하게 되었는데 "어떻게 한 마을이 죽고 사는 문제를 찬성과 반대 여론조사로 결정할 수 있다는 말이요?" 세상 그 누구도 생사여탈권은 쥐고 있지 않다는 메시지였다. 절차적 정당성이 부실한 첫 단추가 잘못 꿰어져서 수많은 사람들에게 마음고생을 시키고 있다면 이는 정의에 위배되는 것. 민주국가는 그 누구에게도 희생을 강요 할 수 없는 시스템이다. 특히 '국가라는 이름으로 대를 위해 소를 희생하라'고 강요해서는 안 된다는 사실을 신산리에서 새삼 확인하게 된다. <시각예술가>



낮은 담장을 가진 이웃
<연필소묘 79㎝×35㎝>


가릴 것도 없고, 막을 것도 없다. 최소한의 경계표시에 불과한 저 돌담에 쏟아지는 뙤약볕을 그리게 된 것은 조상 대대로 살아온 신산리 사람들의 품성을 전하려 함이다. 분명 초가집 시절부터 저렇게 이웃하여 살았으리라는 추측. 집안에서 언성이라도 조금 높으면 무슨 말을 하는 지 알아 들을 수 있을 정도의 거리다. 가까운 이웃은 사촌보다 의지 할 것이 많아서일까? 그래서 아이들은 동네 어른을 '삼촌'이라고 불렀다. 부모님의 형제 사이로 생각했으니까. 한반도에서 관용구처럼 쓰이는 이웃사촌이 여기에서는 촌수가 한 차원 가깝다. '이웃삼촌'이다.

해안도로를 걸어가다가 만난 옛모습 그대로의 취락구조를 바라보며 돌담을 쌓으면서 이웃의 동선을 먼저 고려하는 품성이 느껴지니 감동하지 않을 수 없었다. 저 모습이 신산리사람들의 '살아온 정'이라고 생각하여 오래된 흑백사진의 느낌을 줄 수 있도록 연필 한 자루를 들고 모든 채도를 빼고서 명도만 가지고 내리쬐는 눈부신 광선을 묘사하게 된 것이다.

유리창문에 반사된 느낌은 이웃의 모습이며 그 안에 은은하게 드러나는 희미함은 그 집안 속사정이다. 오버랩 된다고 해야 하겠다. 쌓인 돌담들이 태양광선과 만날 수 있는 경우의 수가 이토록 한 곳에서 풍부하게 자리잡을 수 있다는 것 또한 경이로운 대목이다. 역광 실루엣에서부터 측면과 정면, 경사각이 있는 음지에 건물에서 반사광이 날아와 공간감을 발생시키는 영역까지 빛의 풍요가 이웃의 정이 얼마나 돈독한지 보여주는 듯.



하늘은 누구의 것인가?
<수채화 79㎝×35㎝>


그날은 이랬다. 마을 풍경을 그리기 위해 돌아다니던 날, 온통 먹구름이 드리운 하늘이 상징하는 것은 신산리가 처한 제2공항 문제라는 생각이 들 정도. 구름 사이로 햇살이 내리 비치자 기상레이더 건물이 하얗게 빛났다. 문득, 함축적으로 흘러나온 독백이 있어 그리기 시작. '저 하늘은 비행기의 것인가?!' 저 건물의 기능과 목적은 하늘의 조화를 관찰하고 알리는 것이다. 물질문명에 의하여 인간의 편리함이 생성되었다고 할지언정 하늘이 스스로 움직이는 것을 막거나 제어 할 수는 없는 것.

어떤 심정을 하늘의 구름들이 알아서 드러내 준 것이라 억지스런 붓놀림을 감행한 것이다. 쉽게 내뱉었던 '민심은 천심'이라는 용어가 그리는 내내 부끄럽게 다가온 것은 마을사람들의 심정을 저 하늘 색깔이 그대로 드러내고 있음이니 그러하다.

신산포구로 내려오는 작은 냇가와 같은 물길에서 바라본 모습이기에 아래서 위로 올려다보는 입장에서 파격적 구도가 잡힌다. 길게 펼쳐진 늦여름의 풀과 나무들 사이에 탈색된 주홍색 지붕이 보인다. 현대식 하얀 건물과 대비되는 어떤 상징성. 분명한 것은 돌담과 초록 자연이 품어준 것은 저 슬레트지붕 건물이다. 따로 놀지 아니하는 어떤 일체감. 지배하려 들지 아니하고 자연 속에서 함께 살아가는 삶의 자세를 보는 듯. 있는 그대로 펼쳐진 여름날의 모습과 어떤 공포감까지 느껴지는 짙은 구름. 그 사이를 뚫고 마치 연극무대 조명처럼 들어오는 햇살. 어떤 희망의 메시지를 그리려 했는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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