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 바꾼 바느질… 사랑과 선함 깨우고 싶어요" [당신삶]
입력 : 2023. 07. 05(수) 12:55수정 : 2023. 10. 05(목) 15:12
김지은 기자 jieun@ihalla.com
[당신의 삶이 이야기입니다] (11)바느질로 꿈꾸는 신소연 씨
운명처럼 배우게 된 전통침선
제주에서 작품활동·교육 이어
청년장애예술가랩·예술보건실
예술을 통한 선한 영향력 전해
운명 같은 부름에 바느질을 시작한 신소연 씨. 그는 바느질을 통해 사랑과 선함을 깨우고 싶다고 했다. 신비비안나 기자
[한라일보] 삶은 예측할 수 없다. 신소연(48) 씨의 인생에 '바느질'이 들어온 것도 그랬다. 30대 초반, 운명 같은 부름이 그의 삶을 뒤바꾸었다.

"살면서 삶에 의문이 드는 시기가 있었어요. 원하는 것을 얻고자 할 때, 사랑을 할 때, 인간으로서 도리를 지킬 때, 사람들은 그 마음을 어떤 힘으로 평생 지키고 사나 하는 고민이었어요. 그때 선생님을 만났습니다."

전통침선공예가인 소연 씨의 '선생님'은 대한제국 이정인 침선상궁의 제자 '전영자 선생'이다. 독립운동가 집안에서 태어나 일평생 전통침선의 맥을 이었던 인물이다. 소연 씨는 선생과의 첫 만남, 그날의 대화를 지금도 기억한다. 1시간으로 잡혀 있던 일정은 장소를 바꿔가며 5시간 동안 이어졌다. 전영자 선생은 처음 본 소연 씨를 집까지 초대했다.

"'왜 나를 찾아왔느냐'고 물으셨어요. 그래서 제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질문이 와 있다고 말씀드렸지요. 그러면서 여쭤봤어요. 나라를 잃고 쫓겨나야 했던 어려운 시대를 살면서 어떻게 마음을 지킬 수 있었는지, 전통침선을 이어오신 그 마음이 궁금하다고요. 그러니 막 웃으시면서 말씀하셨어요. '뼈가 있는 일을 해야지. 살이 있는 일을 하면 안 된다'고 말이에요. 뼈가 있어야 살도 붙고 피도 돌고 계속 성장할 수 있다고요. 항상 무언가를 할 때는 내 안에 그것이 살인지 뼈인지 구분하면 된다고 하셨지요."



|기술 아닌 '마음'을 배우다

그 말의 여운이 가시지 않았던 때에 한 통의 전화를 받았다. "신소연 선생, 자네는 나를 따라 전통침선을 해야겠네." 전영자 선생이었다. 결코 쉽게 내릴 수 없는 결정이었다. 관심은 있었지만 이전까지 전혀 무관한 일을 해 왔던 터였다. "'해볼게요' 하고서 했다가 그만두는 것은 선생님 인생에 너무 큰 배신 같았다"고 소연 씨가 말했다.

꼬박 일주일을 울며 고민했다. '인생의 스승'으로 생각하던 이들에게 모두 물었다. 그때 소연 씨에게 와닿은 말이 있다. '제자가 어떤 기능을 배우고 싶어 스승을 찾아갈 수는 있지만 그 스승의 제자가 될 순 없다. 제자는 스승이 택한다'는 거였다. 소연 씨의 표현처럼 그때 "모험"처럼 인생을 던졌다.

2009년 봄, 선생의 집으로 첫 출근을 했다. 오전 10시쯤 도착해 오후 6시까지를 그곳에서 보냈다. 선생은 소연 씨가 원하는 재료로 작품을 만들어 보도록 하고, 제 작품도 마음 놓고 뜯어볼 수 있도록 했다. 실패할 때는 기분이 어떤지 물어보고 어떻게 하면 좋을지 스스로 깨닫게 했다. 소연 씨는 "여태껏 보지 못한 열린 수업이었다"고 떠올렸다.

지난달 29일 예술보건실에서 만난 전통침선공예가 신소연 씨. 예술보건실은 제주문화예술재단이 운영하는 '예술공간 이아' 안에 자리해 있다. 신비비안나 기자
단순히 바느질 '기술'을 배운 시간이 아니었다. 소연 씨에게 선생은 항상 물었다. '근데 너는 이걸 배워서 뭐를 할래?' 소연 씨는 "마음을 배워야 했다"고 말했다.

"바느질을 수련하고 작품을 완성할 때는 골무가 있어야 해요. 지속해야 계속 연습하고 큰 작품을 만들 수 있는데 골무가 없으면 손이 굉장히 아프거든요. 바늘보다 먼저 밀치고 나갈 수 있는 게 '골무의 힘'인데, 선생님은 그 메시지를 강조하셨어요. 억센 세상에서도 앞으로 나아갔던 골무와 같은 여성의 힘을 말하고, 해외에서 전시회를 열고 작품을 기부하며 독립운동가와 동포들이 민족의 우수성을 잃지 않게 하려고 애쓰셨죠. 그걸 저한테 가르쳐주는 게 중요하셨던 것 같아요."

|제주서 수행하듯 바느질… 나를 마주하다

그렇게 꼬박 2년을 배우고 2011년 서울을 떠나 제주로 왔다. 선생님과의 배움을 잇기 위해 한 달에 2~3번 서울길에 올랐지만 대개는 서귀포 작은 마을에서 하루 17시간씩 '수행'하듯 바느질을 했다. "제 자신에게 질문을 하며 답을 얻던" 시기였다. '무엇을 바느질로 만들어낼 것인가'. 수많은 질문 중에 하나였다.

철저히 '나'에 집중한 시간은 작품 활동으로 이어졌다. 2014년 제주에서 처음 참여한 '분홍섬 공동체' 그룹전을 시작으로 이듬해 1월에는 첫 개인전 '我, 마주'를 열었다. "제 전시를 펼치고 보니 일반적인 전통침선공예 전시와는 다르다는 걸 알겠더라"고 소연 씨가 말했다.

신소연 씨가 2018년 제주4·3 70주년 미술제에 전시했던 작품 '창288'. 신소연 씨 제공
그의 말처럼 소연 씨의 작품은 전통침선의 아름다운에만 집중하지 않는다. 2018년 제주4·3 70주년 미술제에 걸렸던 '창288'만 봐도 그렇다. 4·3 당시 잃어버린 마을 수만큼의 붉은 천 조각을 연결하면서도 한쪽을 텅 비워 놨다. 이웃 할망이 겪은 공포를 전해 들으며 4·3을 마주했던 소연 씨는 "시대는 연결되고 다 비치고 있는데 못 본 척할 뿐"이라는 걸 표현하고 싶었다고 했다.

작업공간이 제주인 만큼 그의 바느질에도 '제주'가 있다. 지금, 이곳에서 예술로 창조하는 삶을 향한다. "보라색 물을 먹으면 보라 꽃이 돼요. 수국은 땅에 따라서 색깔을 달리하고요. 이 땅에 뿌리를 내려 작업을 하고 좋은 사람과 관계를 맺으면서 저 역시 무언가를 표현해야 된다고 생각했어요. 가장 선하면서도 이유와 의미가 있는 것으로요. 지금도 저는 제가 겪는 것들을 그대로 삶에 반영하며 살고 있는 것 같아요."

|바느질로 선사하는 '치유'

그에게 바느질은 '작품'만을 위해 존재하지 않는다. 전통침선으로 누군가에겐 치유를, 또 다른 이에겐 세상으로 향하는 문을 열어주고 있다. 제주문화예술재단이 운영하는 '예술공간 이아' 안에 꾸려진 예술보건실, 청년장애예술가랩도 그런 공간이다. 작품활동과 함께 교육을 꾸준히 이어온 소연 씨의 마음이 담겼다.

예술보건실은 '1인 치유 공예실'이라는 또 다른 이름처럼 오로지 혼자만의 손작업에 집중할 수 있는 곳이다. 미리 예약을 하면 소창 행주, 생모시 테이블 매트 등을 무료로 만들어볼 수 있다. 소연 씨는 "이렇게 시간을 들이는 노동이 아름다운 게 됐을 때 치유가 되는 것"이라며 "(3시간 동안 만든 것을) 치유의 징표처럼 가지고 나가신다"며 웃었다.

신소연 씨가 기획·운영하는 '예술보건실'에 놓인 침선 도구들. 신비비안나 기자
예술보건실은 아름다움을 선물하며 행복을 공유하는 곳이기도 하다. 지난해 이곳을 찾았던 이들이 만들었던 아기 이불 조각은 세로 1m쯤 되는 색색의 조각보가 돼 명주솜 이불을 만드는 데 쓰였다. 완성된 이불 8채는 도내 미혼모보호시설에 기부됐다. 예술보건실이 "선한 것을 행할 수 있는 통로가 되면 좋겠다"는 소연 씨의 뜻과 맞닿아 있는 일이었다.

"'이불 짓는 날'인 5일 동안은 밤 9시까지 예술보건실을 열어뒀어요. 예술보건실을 처음 오는 분들도 잠시 들려 바느질에 참여했는데, 하다가 바늘을 꽂아 놓고 가면 다른 사람이 그걸 수용하면서 마무리했지요. 저 혼자 하는 게 더 빠를 수도 있지만 그 순간들이 결국엔 우리에게 선물로 온다는 것을 경험하게 해 드리고 싶었어요. 이불을 기부할 땐 다들 울컥하셨죠. 그때 같이 다녀온 분들은 올해 최소 15채 이상을 만들어야겠다는 목표가 생기셨어요.(웃음)"

|"모두가 행복한 길이 잘 사는 길"

많은 손에서 탄생한 이불이 생명을 축복한 것처럼 소연 씨는 예술이 가진 힘을 믿는다. 그와 남편 민경언 씨가 청년장애예술가랩 '두번째집'을 운영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청년 장애인이 예술을 통해 공동체 안에서 제 역할과 몫을 배워나가도록 한 공간이다. 현재 청년장애인 5명이 공예, 미술, 연기, 음악 등에서 예술작업을 잇고 있다. 정해진 기간이 되면 무조건 끝내야 하는 기관 수업에 한계를 느낀 소연 씨가 개인적으로 이어오던 수업이 시작이었다. 지난해부턴 제주문화예술재단의 공간 지원 등을 받으며 계속되고 있다.

'1인 치유 공예실'인 예술보건실을 방문한 이들이 만든 아기 이불 조각은 세로 1m쯤 되는 조각보로 이어져 명주솜 이불의 고운 장식이 된다. 이렇게 만들어진 이불 8채는 제주도내 미혼모보호시설에 기부됐다. 신비비안나 기자
'침선을 배워 무얼 할 것이냐'. 바느질을 처음 배울 때만 해도 소연 씨는 스승의 물음에 답을 하지 못했다고 했다. 지금은 그 답을 찾았을까. "인간의 '사랑과 선함'을 깨우는 일을 하고 싶어요." 지금은 돌아가신 스승에겐 올리지 못한 대답이지만 소연 씨가 걸어온 길이 이와 다르지 않은 듯했다.

"저에게 바느질은 어떤 역할을 하는 도구라는 생각이 들어요. 바느질을 함으로써 사람들에게 아름다운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고, 바느질을 가르치면서 다 같이 아름답게 살 수 있다는 것을 믿게 할 수도 있어요. 저도 꿈을 꿀 수 있고요. 한 사람 한 사람이 행복하게 사는 길이 다 같이 잘 사는 길이잖아요. 저는 그 길을 진정성 있게 가고 싶다고 말씀드리고 싶어요."



◇ 당신의 삶이 이야기입니다(당신삶)

수많은 삶은 오늘도 흐릅니다. 특별한 것 없어도 하나하나가 소중한 이야기입니다. 그 이야기가 모여 비로소 '우리'가 됩니다. '당신삶'은 우리 주변의 다양한 삶을 마주하는 인터뷰 코너입니다. 그 이야기를 나누고 싶은 분들은 언제든 문을 열어 주세요. (담당자 이메일 jieun@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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