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觀] 깨지 않는 꿈
입력 : 2024. 03. 29(금) 00:00
김도영 기자 doyoung@ihalla.com
영화 '나이애드의 다섯 번째 파도'.
[한라일보] 우리는 많은 이들이 유용함과 유능함이라는 말에 고개를 크게 끄덕이는 세상 속에서 살고 있다. 기술의 진보는 손바닥 안에서 손가락 만으로도 무수한 일들을 가능하게 만들었고 흥미진진한 프레임 밖으로 잘려진 어떤 순간들은 식빵 모서리처럼 버려지곤 한다. 자주 이 숨 막히는 경쟁 사회가 고통스럽지만 도태되지 않기 위해서는 이 물결을 타고 있어야 한다고 주문을 건다. 쓸모가 없어지는 순간 생존을 위협받을 것 같다는 불안은 점점 더 커져가고 찰나도 허투루 쓰면 안 될 것 같아 초를 쪼갠 조바심의 타이머에 온몸의 촉수를 맞춰 놓는다. 때로는 내가 만든 감옥 같기도 하고 나도 모르는 지옥 같기도 하다. 무쓸모의 존재감이란 억척스러운 자기변명에 불과한 시대가 되어 버렸다.

그런데 이 각박한 삶의 전장에서 안도감을 느끼는 순간은 경쟁에서 승리한 순간이 아니다. 오히려 무용함과 무모함 앞에서 태연하게 스스로를 발견하는 순간, 경쟁에서 느끼지 못한 쾌감이 전해져 온다. 먹고사는 일 앞에 초연해질 수는 없겠지만 그럼에도 살아 숨 쉬는 나 자신의 심장이 뛰게 하는 일이 누구에게나 있을 것이다. 포기하지 않고, 나이라는 편견에 주눅 들지 않고, 나와 타인을 믿고 꿈을 좇는 일. 다시 말해 누군가 나의 등을 떠밀지 않아도 기꺼이 멍석 위로 올라가 신명나게 춤을 추고 땀을 흘리는, 내 인생의 무대를 온전히 누리는 일. 이를테면 63세 여성이 쿠바부터 플로리다까지 무려 100마일이 넘는 바다를 종단하는 일. '나이애드의 다섯 번째 파도'는 그 무용함의 경이로움으로 가득한 영화다.

'나이애드의 다섯 번째 파도'를 관람하는 일은 심드렁하게 누워 있는 나의 편견을 흔들어 깨우는 과정이기도 했다. 실화 기반 스포츠 드라마에 대한 기시감과 60대 여성의 무모한 도전에 대한 의구심들이 영화 속 해파리처럼 끈질기게 감상에 따라붙었다. 도대체 왜 스스로를 괴롭히고 주변 사람들까지 피곤하게 만드는 '기록'에 목숨까지 거는 걸까?가 영화의 중반부까지의 내 감상이었다. 독선적인 데다 거칠기까지 한 나이애드의 도전은 종종 과한 욕망으로 느껴졌고 자신은 물론 자신을 돕는 이들의 생계마저 나 몰라라 하는 무신경함은 무례함으로 느껴지기도 했다. 무려 30년 전의 실패를 만회하고자 하는 집요한 명예욕이 아닐까 의심하기도 했고.

그런데 나이애드의 실패가 늘어날수록, 다시 말해 도전이 더해질수록 그 마음이 조금씩 바뀌었다. 만 하루가 넘게 물속에서 오직 한 곳 만을 향해 몸을 움직이는 사람의 정직한 움직임이 화면 너머 찌뿌둥한 몸과 마음을 가진 나라는 관객을 철썩철썩 때리는 파도처럼 느껴졌다. 나이애드의 무모함과 무용함이 그 순간 기이한 용맹함 다가왔기 때문이다. 동시에 마라톤 수영을 하는 그의 모습에 수많은 실패를 딛고도 다시 도전하는 사람들의 모습이 겹쳐졌다. 끊임없이 오디션에 참가하는 가수 지망생들의 모습도, 20년 넘게 신춘문예에 도전하는 작가 지망생들의 모습도, 아르바이트를 해서 모은 돈으로 단편 영화를 찍으며 영화감독의 꿈을 놓지 않는 이들의 모습도 겹쳐졌다. 물론 나이애드는 무명의 도전자들과는 다르게 미디어가 주목하는 유명인이고 그의 도전은 확실히 특별한 지점이 있지만 누군가의 평가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자신의 꿈을 끝까지 믿어준다는 측면에서 꿈에서 깨지 않는 이가 가진 강렬한 아름다움의 공통점을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었다.

 내 주변에도 여전히 꿈의 도전을 멈추지 않는 이들이 있다. 주변뿐 아니라 우연히 보게 된 유튜브 영상 속에서도 무모함의 힘을 축적하는 이들을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다. 누군가는 안정적인 삶에서 멀어진 그들을 안쓰럽게 보기도 하고 세상이 정해 놓았다는 기준에서 떨어진 채 자신의 길을 찾아 걷는 이들을 도태되었다고 말하기도 한다. 그런데 늘 놀라운 건 안정된 삶을 살고 어떤 분야에서 확고한 위치를 얻은 이들의 빛나는 트로피들보다 여전히 진행 중임을 멈추지 않는 이들의 생생한 기운이 더 번쩍이는 황홀한 순간으로 다가온다는 것이다. 프레임 밖으로 주저 없이 나가고 프레임과 무관하게 내 삶의 테두리를 정해 놓지 않는 이들이 각자의 완주와 완수 끝에 외치는 환호의 포효는 결코 시스템의 포상으로는 불가능할 오롯하고 영롱한 마침표일 것이다. <진명현 독립영화 스튜디오 무브먼트 대표(전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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