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觀/ 마이 선샤인] 멜팅 포인트
입력 : 2026. 01. 19(월) 03:00
고성현 기자 kss0817@ihalla.com
영화 '마이 선샤인'
[한라일보] 향기가 있는 것들은 영원하지 않다. 지속력이 아무리 강하다 한들 향수는 고작 하루 정도를 체취 위에 머물다 떠나가고 크고 아름답던 향초 역시 시시각각 녹아 사라진다. 그런데 그 영속성이 없어 오히려 가늠할 수 있는 아름다움만이 전해주는 특별함이 있다. 영원을 약속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다는 안도에 가까운 체념, 사라지기에 다시 채워질 수 있다는 경험치가 주는 회복의 기대. 이 낯선 감각은 계절마다 느낄 수 있는 감각이기도 하다. 봄의 꽃잎도 여름의 신록도 가을의 단풍도 눈부시게 찬란했다가 어느덧 시야에서 사라진다. 다시 오겠지만 떠나간다. 나와 자연 사이를 약속하는 일은 불가능에 가깝지만 그럼에도 그토록 아름다웠던 한때가 인간의 마음 안에 남는다. 처음 느꼈던 탄성에 가깝던 아름다움이 조금 변색된 채로, 약간 아프고 저릿한 감각으로.



겨울의 눈 또한 마찬가지의 통증을 남긴다. 하늘에서 내리는 하얀 가루들은 손에 닿자마자 녹아 물이 되어 흘러내리는데 땅에 안착한 그들은 서로를 부둥켜 안고 쌓여 거대한 덩어리가 된다는 것이 매번 신비롭다. 그리고 햇빛이 닿는 순간 처음의 눈부심과는 다른 흔적을 남기며 사라진다는 것에 매번 허탈하기도 하다. 거대한 아름다움이 떠나가는 풍경을 속절없이 바라보다 보면 알게 되는 것들, 오쿠야마 히로시 감독의 영화 <마이 선샤인>속에 그 겨울의 눈과 햇빛이 공존한다. 눈부시게 반짝이고 사무치게 그리워지는 풍경 안에는 돌아갈 수 없는 시절의 통각이 있다. 이 영화는 돌이켜 보면 응당 공존해야 했던 아름다운 통증에 관한 영화다.



훗카이도의 작은 시골 마을에 사는 소년 타쿠야(코시야마 케이타츠)는 아이스 하키 팀의 소속이다. 그런데 수많은 또래들과 몸을 부딪혀야 하는 아이스 하키보다 또래의 소녀 사쿠라(나카니시 키아라)가 홀로 추는 피겨 스케이팅에 시선이 더 머무른다. 역광 속에 홀로, 누구보다 자유롭게 빙판 위를 유영하는 사쿠라를 향한 동경은 소년 타쿠야의 어떤 시간을 쑥쑥 자라게 하는 겨울의 햇살처럼 찾아온다. 사쿠라의 동작을 혼자 따라해보던 타쿠야에게 머무르는 시선도 있다. 사쿠라를 지도하는 코치 아라카와(이케마츠 쇼스케)는 서툰 타쿠야를 통해 지나간 자신의 시절을 보는 이다. 비틀거리는 발걸음이 동선이 되기 위해, 삐걱대는 몸짓이 춤선이 되기 위해 빙판 위에 머무르던 시절을 아라카와 또한 모르지 않는다. 사쿠라를 바라보는 타쿠야에게 아라카와가 손을 내밀고 이제 세 사람은 함께 움직인다. 영원히 녹지 않아도 좋겠다는 생각을 들게 하는 아름다운 눈의 풍경 속에서 타쿠야와 사쿠라의 아이스 댄스가 점차 리듬과 멜로디로 충만해질 때 아라카와의 어떤 시간은 또 한 번 끝이라는 지점에 가 닿는다.



동경은 어쩌면 유년 시절을 온통 채울 수도 있을 단어다. 어딘가와 누구가를 향해 흔들리는 마음은 속도를 얻게 되고 그 전력질주야 말로 세상의 전부를 만나볼 수 있을 놀라운 선물 같이 느껴진다. <마이 선샤인>의 눈과 얼음 위에서 소년과 소녀는 그 감각을 온전히 마주한다. 성취나 성공이 아닌 가능성을 확인하는 첫 번째 통로 와도 같은. 내가 발견한 나의 길, 그 길 위에서 두려움을 뒤로 두고 달리던 순간이야말로 누구나 갖고 있을 생의 보석일 것이다. 타쿠야는 놀라운 속도로 사쿠라와 아라카와 선생님의 뒤를 따라 같은 선상에 서게 되는 소년이다. 사쿠라는 달리다 멈춰 선 상태에서 비로소 함께 하는 즐거움을 알게 된 소녀다. 그리고 아라카와 선생님은 생의 보석이 다시 빛나는 순간을 목도하는 어른인 동시에 타쿠야와 사쿠라의 친구이자 동료로 존재한다. 이 삼각의 관계는 눈처럼 쌓여 눈부신 양감을 갖는다.



그런데 <마이 선샤인>은 기어코 이 양감의 질감까지를 지켜보는 영화이기도 하다. 눈이 녹고 흔적을 남기고 새로운 계절이 찾아올 때 세 사람의 관계는 또 다른 국면을 맞는다. 영화는 그 함께여서 아름답던 시절이 남긴 통증 또한 찬찬히 짚어낸다. 속절없는 매혹과 정체 모를 속앓이의 시간 까지를 모두 담으며 미세하게 갈라진 틈을 찾아내고 어느새 녹아버린 마음의 허물어짐을 응시한다. '움트다'는 '초록 따위의 싹이 새로 돋아나기 시작하다.' 라는 뜻과 '기운이나 생각 따위가 새로이 일어나다'라는 뜻을 가진 동사다. 심어진 곳에서 단단한 어제를 깨고 나오는 이들이 새싹에서 수피까지의 시간을 감당하는 내내 성장은 이어질 것이다.

<진명현 독립영화 스튜디오 무브먼트 대표(전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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