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학주의 詩읽는 화요일] (63)질투는 나의 힘-기형도
입력 : 2024. 04. 16(화) 00:00수정 : 2024. 04. 16(화) 10:17
송문혁 기자 smhg1218@ihalla.com
질투는 나의 힘-기형도




[한라일보] 아주 오랜 세월이 흐른 뒤에

힘없는 책갈피는 이 종이를 떨어뜨리리

그때 내 마음은 너무나 많은 공장을 세웠으니

어리석게도 그토록 기록할 것이 많았구나

구름 밑을 천천히 쏘다니는 개처럼

지칠 줄 모르고 공중에서 머뭇거렸구나

나 가진 것 탄식밖에 없어

저녁 거리마다 물끄러미 청춘을 세워 두고

살아온 날들을 신기하게 세어보았으니

그 누구도 나를 두려워하지 않았으니

내 희망의 내용은 질투뿐이었구나

그리하여 나는 우선 여기에 짧은 글을 남겨둔다

나의 생은 미친 듯이 사랑을 찾아 헤매었으나

단 한 번도 스스로를 사랑하지 않았노라

삽화=배수연


창밖의 왕벚꽃나무에 왕벚꽃 가득해 사진 몇 장을 찍고, 왕벚꽃 핀 가지들이 창을 가릴 만큼 피었으니 어느 날 주르르 지겠구나, 싶다. 옛날에, 연세대학교 입구에 독수리 다방이 있었다. 거기서 기형도 시인을 처음 만났다. 그러나 왕벚꽃나무가 그 어디에 있었던 건 아니다. 전혀 무관한데 왕벚꽃 핀 걸 보다가 '질투는 나의 힘'은 왜 떠올랐을까. 그가 짧은 세상을 살다 가서였을까. 오늘은 그런 날인가. 그때 청춘은 힘들었고 지금도 청춘을 사는 일은 혼란스럽고 버겁기만 하다, 그런 의미에서 속절없이 청춘은 갔지만 청춘은 달라지지도 않았다. 기형도의 청춘에 대한 탄식과 고뇌는 오늘날에도 변함없이 값비싼 대가를 요구하며 미친 듯이 희망과 사랑을 찾아 헤매게 하고, 진실과 정신과 이데올로기의 세계 또한 만족하는 일이 없고 충돌을 계속하며, 청춘은 전쟁 중이라는 사실만이 기록되어 진다. 왕벚꽃이 핀 지상에 바람은 불고, 청춘이 내게 용인하지 않았던 혹은 용인했던 질투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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