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요담론]아버지의 하얀 고무신
입력 : 2017. 06. 29(목) 00:00
이성용 hl@ihalla.com
지난 5월에는 유난히 휴일이 많았다. 근로자의 날, 석가탄신일, 어린이날을 비롯한 법정공휴일과 5월 9일 대통령선거와 같은 임시공휴일, 어버이날, 스승의 날 등이 있었다. 가족의 소중함을 생각하고 기념하는 날들이 유난히 많아서 5월을 '가정의 달'이라고 부른다. 가정의 달에는 가족은 물론 이웃들과도 좀 더 정감있게 소통하고 교감해 보자는 사회적 약속과 같은 것이다. 사랑하는 가족들이나 소중한 사람에 대한 사랑과 관심이 특정한 시기에 한정되는 것은 아니지만, 5월달만이라도 가족애를 확인해보고 우애가 돈독해지기를 바라는 마음이 있을 것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5월이면 소중한 사람이 생각나고 보고 싶을 것인데, 필자는 5월이 되면 항상 고무신이 생각난다. 세상의 모든 고무신이 아닌 '아버지의 하얀 고무신'이 생각나고 올해도 그러한 생각을 하면서 보냈다. 요즘 고무신은 오일장이나 전통시장을 가야만 찾을 수 있을 정도로 쉽게 보기가 힘든 신발이다. 그러나 필자가 어릴 때는 고무신이 흔하고 주변에서 많이 볼 수 있었고, 고향이 농촌이라서 더 많이 보고 자랐던 것 같다. 농촌이다 보니 어릴 때부터 소가 끄는 쟁기나 손수레, 동네 어른들이 지게를 지고 다니는 것을 많이 보았다. 초등학교에 입학할 무렵에 우리 마을에도 경운기가 들어왔다. 농가에 들여온 경운기로 인해 편리하고 일손이 줄어들기는 했지만 모든 농사일을 완전히 대체한 것은 아니었다. 즉, 지게가 계속 활용되었다. 초등학교 때 동네 어른들이 지게에 짐을 나르고 밭일하는 것을 일상적으로 보았다. 필자의 부친도 밭이나 산에 가실 때 지게를 지고 다니셨다. 지게는 짐을 나르는 이동수단이고 노동현장에서 없어서는 안 되는 도구이며, 철없는 아이들에게는 놀이기구가 되기도 했다.

한편, 지금 생각해보니 지게를 지고 다니셨던 아버지들은 검은색의 고무신이나 흰 고무신을 신고 다니셨다. 그래서 어버이날을 보내고 나니 아버지의 하얀 고무신이 다시 생각난다. 그 당시 아버지들은 가족들을 위해 땀 흘려 농사를 지을 때 힘든 노동의 무게를 얇고 발이 보호가 잘 안 되는 고무신에 의존해서 살았던 것 같다. 지금은 고무신이 아주 특수한 경우에나 보이는 것 같다. 고무신은 바닥이 얇아서 지게에 짐을 많이 싣게 되면 어깨를 내리누리는 무게가 발바닥으로 바로 전달되어서 힘들고, 잔돌이 많은 길을 걸어가면 발이 저려서 힘들었을 것이다. 또한 고무신은 날씨가 좋지 않거나, 더운 여름의 경우 발에 땀이 차서 불편했다. 하지만 아버지들은 고무신으로 전해지는 통증도 가족을 위하는 마음으로 참고 견디셨을 것이다.

몇 년전 어버이날 즈음에 돌아가신 아버지의 하얀 고무신이 더욱 더 눈에 밟힌다. 아버지의 무거운 짐을 나누어지겠다고 말하지도 못했고, 잘 키워주셔서 고맙고, 사랑한다는 말도 변변히 표현하지 못했다. 지금이라도 나의 솔직한 마음을 진솔하게 표현하고 싶어도, 이 세상에 그 말을 들어줄 아버지가 없다는 사실이 슬플 뿐이다. 5월을 보내고 나서 늦은 다짐을 하게 되고, 앞으로도 아버지의 하얀 고무신이 그리워질 것이다.

아마도 평소에 가족이나 지인들에게 표현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을 것이다. 그래서 제안을 드리자면 오늘은 집에 가서는 사랑하는 부모님, 자식들에게 사랑한다고 말해봅시다. 세상에 나를 있게 하고, 나의 존재가 이유가 되는 사람들에게 내일이나 다음에가 아니라 오늘 표현해 봅시다. <이성용 제주연구원 연구위원>
기사에 대한 독자 의견 (0 개)
이         름
이   메   일
8189 왼쪽숫자 입력
비밀번호 삭제시 필요
목요논단 주요기사더보기

기사 목록

한라일보 PC버전
검색 입력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