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요담론]위장된 예술, 창조와 표절 사이
입력 : 2017. 06. 22(목) 00:00
양상철 hl@ihalla.com
최근 한국의 서예계는 원로작가 J씨가 후배작가 김정환, 장세훈의 작품을 표절(剽竊)했다는 의혹이 제기되면서 지상과 SNS를 달구고 있다. 음악, 미술, 문학 등과 달리 서예가의 작품에서 표절의 문제가 거론된 것은 근래에 보기 드문 일이다. 예술가는 누구나 서로 간에 영향을 주고받을 수는 있다. 그러나 독창성을 포기하는 것은 아류로서 자기상실을 자초하는 것과 다름 아니다. 표절의 의혹에서 벗어나려면 창조된 가치를 뛰어넘는 재창조의 과정이 필요하고, 단지 새롭다는 것 이상의 더 특별한 의미를 작품에 담아내야 한다.

"신은 자연(自然)을 창조하고 인간은 예술(藝術)을 창조했다"는 말이 있다. 예술작품의 표절은 주변의 흔한 물건 따위를 훔치는 행위와는 차원이 다르다. 창조성(創造性)은 고유하고 주체적인 것이며 개성의 가치와 함께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작가의 정신세계를 유린하여 창조성을 훔친다는 점에서 표절은 작가의 도덕성에 큰 상처를 입힌다. 표절의 의혹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원작의 형식이나 원작자의 의도를 빌려 왔음을 밝히는 것이 상식이다. 이번의 경우는 표절이라고 주장하는 측과 아니라고 주장하는 측이 맞서고 있어, 앞으로 있을 더 많은 논쟁을 예고하고 있다.

얼마 전 대중문화 안에서도 가수 조영남의 그림 위작시비가 있더니, 엊그제는 전인권이 부른 노래, '걱정 말아요 그대'가 독일 그룹 블랙 푀스(black Fooss)의 노래를 표절했다는 의혹으로 세간의 관심을 끈 바 있다. 표절의 역사는 드러나지 않은 더 많은 얘기 거리와 함께 문학, 미술, 음악, 심지어 학술논문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하다. 국내외 현대 미술사에서 영향이냐 모방이냐 표절이냐 하는 문제는 작품의 독창성과 관련하여 치열한 쟁점이 되고 있다. 과거 이응노(李應魯)와 남관(南寬)의 '문자추상의 창작과 모방'에 대한 논쟁이나, 모튼 비비(Morton Beebe)의 사진을 꼴라쥬 했다가 손해를 배상한 라우센버그(Robert Rauschenberg)의 일화 등이 유명하다. 현대에 와서 제프 쿤스(Jeff Koons), 리차드 프린스(Richard Prince), 세리 레빈(Sherrie Levine) 등이 도용, 차용, 전유(appropriation)를 수단화하는 지경에 이르면, 현대예술에서 표절에 대한 판단기준이 지극히 모호한 것도 사실이다.

서예작품에 대한 표절시비는 1991년 대한민국서예대전 수상작인 윤의균(尹義均)의 전서작품이 스승의 작품과 같다 해서 문제 삼은 적이 있었다. 지금껏 서예작품에서 오자(誤字) 시비는 흔히 있지만 표절을 문제 삼는 분위기는 없었다. 그런데 이번에 표절의 문제가 진일보된 형태로 수면 위로 떠올랐다. 진일보하다는 의미는 글씨를 모방했다는 게 아니라 작품의 구성과 형식면에서 표절의 시비를 가리고 있다는 것이다. 더구나 한국서단에서 지명도를 갖는 원로와 기성작가 간에 "누가 먼저냐?"는 창작 논쟁을 벌이고 있다는 점에서 앞으로 더 큰 파장이 예상되고 있다.

일반적으로 서예는 공부과정에서 옛날의 서예가나 선생의 글씨를 임서(臨書)하는 것을 중요하게 여기다보니, 모방에 대한 저항감을 별반 느끼지 않는 편이다. 심지어 남의 글씨를 그대로 베껴 쓰더라도 학서의 과정임을 들어 문제 삼지 않는 경향이 없지 않다. 임서제일주의(臨書第一主義)에 편승하여 묵인되는 이러한 창작태도는 작가들을 아마추어리즘에 가두어 서예의 예술성을 낙후시키는 결과를 낳고 있다. 이번의 표절에 대한 진실공방이 한국서예의 예술성을 한층 앞당기는 기회가 되길 빌어본다. <양상철 융합서예술가·문화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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