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요담론]삶의 주체와 객체
입력 : 2016. 07. 21(목) 00:00
편집부기자 hl@ihalla.com
나의 삶의 주인공으로 살고 싶은 마음 때문에 가끔씩 자신을 돌이켜 보며 삶의 궤적들을 그려보곤 한다. 그때 무엇에 붙들려 있으면 나의 실상을 그대로 볼 수 없을 것 같아 객관적으로 보려고 노력한다. 무엇보다도 내가 갖고 있는 것보다 높은 가치를 기준으로 삼으려고 한다. 높은 망루에 걸터앉아 걸어 다니고, 일하며, 사람들과 얘기하기도 하고 생각에 빠져있는 자신을 내려다보는 일을 즐겨하고 있다.

나의 삶을 경영하며 살아야 하는데, 삶의 현상에 끌려다니는 자신을 볼 때도 많다. 그러한 경험들은 삶을 경영할 때와 삶에 붙들려 살 때의 차이를 알게 해준다. 경영하는 삶은 자기 삶의 주체로 살 수 있지만, 현상에 붙들려 사는 자에게는 삶의 현상이 주체이고, 자신은 현상이 요구하는 대로 살아가는 객체가 되고 만다. 사회에서의 삶은 또 다른 차원의 문제이다. 사람과 사람과의 관계에서는 누구든지 주체로도 살고 객체로도 살지만, 자기 삶의 주체인 자에게는 모두 의미있는 삶이다. 그러나 자기 삶의 객체인 자는 어떠한 삶도 주체로 살 수 없다.

삶은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이 혼재되어 있다. 대부분 보이는 삶에 비중을 두기 쉽다. 보이는 삶은 그러한 삶을 구성하는 환경에 붙들리기도 쉽다. 왜냐하면 내가 보는 환경과 타인이 보는 환경에 이미 마음이 넘어갔기 때문이다.

삶의 목적이 보이는 현상에 집착할 때 삶의 주체가 아닌 객체로 살기 쉽다. 우리가 볼 수 있는 삶의 현상은 삶의 수단일 뿐 결코 삶의 목적이 될 수 없다. 수단을 목적으로 인식하게 되면 삶의 본질보다 현상을 더 크게 생각하게 된다. 우리 사회가 현상적 삶에 비중을 많이 두고 있기 때문에 흔히 물질중심의 사회라고 하는 것 같다.

우리의 삶은 사회를 떠나 살 수 없다. 그 사회에서 생존하기 위해 먼저 원하는 일자리를 찾는다. 그 직장을 얻으면 다 이룰 것처럼 보였는데 직장은 또 다른 것을 찾기 위한 시작에 불과하다. 현상적인 것은 언제나 우리의 바람을 채워주지 못한다. 일자리를 찾는 일은 일시적인 목표는 될 수 있으나 삶의 수단일 뿐 삶의 본질적 목적은 아니다. 자기 삶을 객체로 살다보면 삶의 본질을 잃어버리게 된다.

삶의 본질을 잃어버린 자는 자신이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야 하는지를 모른다. 자신의 내면에서 바라는 삶을 살기보다 그가 처한 상황이 요구하는 그대로 따라다니게 된다. 자신의 부족을 깨닫기도 하지만 그 이유조차 현상적인 환경 탓으로 돌려버린다. 현상적인 것을 쫓다가 현상적인 것에 갇힌 채 삶의 주체가 아닌 객체로 살게 된다.

자신이 원하는 삶을 살기 위해 열심히 살고 있는데 자신의 실상을 잃어버린다. 열심히 살고 있지만 자신의 진정한 모습은 보이지 않고, 자신의 행위만 드러나는 삶, 그것도 현상에 끌려다니는 삶을 살게 된다. 자신이 누구인가를 모르는 사람은 타인을 배려할 수 없다. 어쩌면 사회문제가 발생하는 까닭이 여기에서 비롯되는 것은 아닐까 생각해 본다.

사회문제를 해결하는 것도 바람직한 미래를 이루는 일도 구성원이 함께 참여해야 한다. 그리고 개개인의 삶의 본질을 찾는 일부터 시작해야 한다. 자신이 살고자 하는 삶의 본질이 무엇인가를 찾고, 주체로서 살아갈 수 있는 사회가 행복한 사회이다.

모두 다 행복한 섬, 제주는 내가 참여할 때 나에게도 찾아오고 우리 모두에게도 찾아올 것이다. <김태윤 제주발전연구원 선임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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