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요담론]섬, 제주에서 문화가 이슈 안 되는 이유
입력 : 2016. 05. 19(목) 00:00
편집부기자 hl@ihalla.com
일반적으로 외부에서 제주를 바라볼 때 초록빛 산, 푸른 바다, 노란감귤이 섞여진 파스텔 색을 자연스럽게 연상한다. 우린 초록빛 산에서는 세계유산을 찾아내었고, 푸른 바다에서는 제주경제의 맥이었던 해녀의 가치를 부상시키고 있으며, 촉촉한 대지에서는 감귤산업과 더불어 관광산업을 키우고 있다. 그래서일까, 외지인들이 제주를 인식할 때는 숨 가쁜 육지부의 일상생활에서 탈출하기 위한 이상 도시, 휴양의 도시로서 그 가치를 두고 있는 듯하다.

과거 제주가 고려의 직·간접적인 지배체제에서 벗어나 조선의 관찰사제로 편입된 이후 제주를 바라본 시각은 그리 낭만적이지 만은 않았다.

조선 전기 왕조실록에서 보이고 있는 제주관련 사료들을 살펴보면, 제주는 바람 많고(多風), 큰비가 많고(多水), 가뭄이(多旱) 잘 드는 지역으로 오히려 풍재(風災), 수재(水災), 한재(旱災)를 포함한 세가지 재앙(三災)이 있는 곳으로 인식되었다. 세종대왕 당시 나주 교수관 진준의 상서에 의하면, 제주는 여러 번의 풍재로 해마다 흉년이 드는 지역이라고 했고, 중종 때 제주목사 이운의 계문에서도 암석 많고 토질이 척박하고, 툭 트인 큰 바다로 인해 풍재와 한재가 많다고 했다. 선조 때는 풍재, 수재에다가 충재(蟲災)까지 입어 군수 물자용(國屯) 말과 소까지도 굶어죽을 판이라고 기록하고 있다.

이처럼 사람이 살기 힘든 지역으로 묘사된 제주는 목사부임을 받고서도 이리저리 핑계를 대면서 임관을 회피하는 내용들이 자주 등장하고 있어 제주를 바라본 시대 인식의 변화를 다시금 느끼게 한다.

언제부터인가 제주는 가난한 삼재(三災)의 땅이 아닌 삼다(三多:돌, 바람, 여자)의 제주로 내용이 변화되었다. 돌, 바람으로 인한 척박함과 경제권을 쥔 여자가 많았다는 현실을 반영한 삼다에서 오히려 독특한 문화 특성을 가진 신비의 땅으로 묘사되고 있다. 여기에 우린 돌에서 농업유산을, 여자에서 해녀 무형유산을, 바람에서 풍화를 이겨낸 지형에서 세계유산이란 세계적인 콘텐츠를 만들었다. 어디 그뿐인가? 워낙 지세가 척박하기 때문에 근검절약으로 안분지족해야만 했던 시절의 이야기를 삼무(三無)로 풀어내었고 최근 관광산업이 급부상하면서 아름다운 자연, 따뜻한 인심이 있는 민속, 특이한 산업구조에 대한 삼려(三麗), 삼보(三寶)가 제주를 상징하는 아이콘으로 나오고 있다.

이처럼 삼재가 삼다·삼무로 다시 삼려·삼보로 이어질 수 있는 데에는 다른 지역과는 다른 독특한 제주만의 매력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 제주는 이미 2015년 기준 관광객 1370만 명을 넘어섰고, 순유입 인구 1만4000명이 정착하였다. 지속적인 관광객의 증가와 세종시를 뺀 전국 최고의 순유입률이 의미하는 것은 제주에서 자연을 벗 삼을 때 파생된 문화특수성에 매료되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현재 제주문화의 가치를 키우겠다는 정책방향 속에서 문화예술 사업비를 연 1000억원 이상을 투입하고 있고, 2375억원 이상이 투입되는 도시재생 또한 문화재생으로 풀어내고, 제주 곳곳이 예술로 그려지고 있지만, 제주인의 삶의 질 향상 속에서 도드라진 문화 이슈는 보이지 않는다.

제주가 문화융성이라는 국정정책과 맞물려 문화도정이 왔음에도 불구하고 최근 몇 년간 보인 제주의 키워드는 부동산 광풍, 도시환경의 악화, 관광개발에 따른 공적 경관의 사유화라는데 있다. 이 실타래의 원인은 최근 10년간 저돌적으로 달려온 무분별한 국내외 외자유치와 양적관광에만 치우친 결과물이란 이유도 있겠으나, 근본적으로는 제주문화를 만들며 살아가는 도민들을 위한 제주 문화의 선과 색채가 살아있는 도시계획과 경관계획이 없기 때문이다. <오수정 제주특별자치도의회 정책자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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