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觀] 아름다운 통증
입력 : 2024. 05. 10(금) 00:00수정 : 2024. 05. 10(금) 20:28
김지은 기자 jieun@ihalla.com
영화 '사랑니'.
[한라일보] 사랑니는 '어금니가 다 난 뒤 성년기에 맨 안쪽 끝에 새로 나는 작은 어금니'를 말한다. 이 작은 어금니가 입 안에서 자리를 잡을 때 첫사랑을 앓듯이 몹시 아프다고 해 '사랑니'라는 명칭이 붙게 됐다고 한다. '사랑니'라니 별 수 없이 낭만적일 수밖에 없는 이름이다.

올해로 25회를 맞은 전주국제영화제에서는 정지우 감독이 연출하고 배우 김정은이 주연을 맡은 영화 '사랑니'의 상영이 있었다. 2005년 개봉작이니 무려 20여 년 만에 극장 스크린을 통해 다시 상영하게 된 셈인데 영화의 내용과 잘 어울리는 숙성 기간이 아니었을까 싶다. 영화의 개봉일을 생일이라고 한다면 '사랑니'는 봄날의 전주에서 성년을 맞게 된 것이다.

학원 강사인 30살의 조인영은 어느 날 17살의 제자 이석과 사랑에 빠진다. 선생과 제자, 연상의 여성과 미성년자인 남성의 사랑이라는 이 대담한 연애담은 강렬한 매혹을 동반한 사랑의 통증으로 가득하다. 그런데 인영이 이석과 사랑에 빠진 이유가 의미심장하다. 그녀의 첫사랑과 이석이 너무 닮아 있었기 때문이다. 이름도 생김새도 그리고 무엇보다 인영이 느끼는 감정이. 그런데 인영과 동거 중인 고교 동창 정우는 인영이 사랑에 빠진 이석이 그녀의 첫사랑과 전혀 다르다고 말한다. 이름만 같을 뿐 하나도 닮지 않았다고. 그렇다면 인영은 대체 첫사랑에 다시 빠진 것일까, 완전히 새로운 사랑에 빠진 것일까.

'사랑니'는 사랑을 둘러싼, 사랑 안의 모든 마음들을 건드리는 영화다. 자기 확신에 가득 찼던 사람이 송두리째 흔들리는 풍경화인 동시에 기억이라는 미세한 붓에 묻힌 감정이라는 물감으로 그려낸 인물화이기도 하다. 아픈데도 황홀하고 확실하지는 않지만 확신할 수는 있는 내 안의 감정들을 몸 밖으로 꺼내 놓는 이 영화는 사랑의 재료를 세심하게 플레이팅한 정교한 정물화로도 느껴진다.

내가 사랑 영화에 매혹되는 순간은 늘 이렇게 왔다. 모두의 사랑이 다름을, 그 다름이 아름다움을 간직하고 있음을 영화가 스크린에 꺼내 놓는 순간 나는 그 영화와 사랑에 빠진다. 그런 측면에서 '사랑니'는 사랑 영화를 사랑할 수 있는 조건들을 온전히 충족시키는 영화다. 이 영화 속에는 세상의 관습도 영화적인 관습도 없다. 물 묻은 듯 번지고 불붙은 듯 일어나는 사랑의 변화무쌍함을 흥미롭게 따라가는 조심스러운 눈과 발이 있을 뿐이다. 영화의 두 눈동자는 사랑의 황홀함에 취해 춤추듯 움직이고 영화의 두 발은 가늠할 수 없는 사랑의 거리를 확인하기 위해 걷고 멈추는 일을 반복한다.

'그래서 인영은 과연 누구와 사랑에 빠진 것일까'라는 질문은 유효하긴 하지만 적합하지는 않다. 모든 사랑에서 정답을 찾기 어렵듯 그녀가 빠진 것은 명확한 대상이 아니라 감각하는 순간일지도 모른다. 들뜨고 달떠서 입맞춤 중에 분연히 그녀의 몸이 떠오르는 것처럼 그녀의 사랑은 온전히 스스로의 것이다.

<진명현 독립영화 스튜디오 무브먼트 대표(전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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